역사 왜곡
*유교.불교.기독교에 의한 역사 왜곡
♥유교에 의한 역사 왜곡
ᆞ공자가 주창한 유교는 중국이 세계 중심이요. 그밖의 민족은 중국에 예속된 오랑캐에 불과하다는 중화주의를 내세운다.
ᆞ유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던 고려와 조선은 존화사대주의자들이 중국주의 사관을 그대로 답습하여 우리 역사에 끼친 해악이 심각하다.
ᆞ고려의 유학자들은 한민족의 국통맥이 기자조선, 위만조선,ㅇ 남삼한, 신라로 연결되는 것으로 왜곡하였다. 이러한 역사 왜곡에 앞장 선 인물이 고려 중기 김부식이다.
김부식은 고구려를 이은 대진(발해)의 역사를 완전히 지워버린 반면, 신라 역사는 망하는 날까지 세세히 기술하였다.
ᆞ묘청, 정지상의 고토 회복을 위한 서경 천도 운동을 벌렸을 때, 김부식은 집권층이 유학자들을 장악하려는 음모라고 몰아붙였다.
ᆞ신채호는 조선 일천 년 이래 가장 큰 사건이라고 평가한 민족중흥 운동이라하였다. 서경천도 운동이 실패함으로 환국,배달국, 고조선의 계승이 단절되었다. 이것이 바로 존화사대주의 였던 것이다.
ᆞ조선초에는 춘추와 자치통감 강목만을 사필로 여기고 한민족의 고유 사서를 이단이라 하여 모조리 압수 소각하였다.
ᆞ태종 때에는 서운관에 보관되었던 고유 사서를 공자의 가르침에 어긋난다하여 소각하였고, 세조에서 성종까지 3대에 걸쳐 임금이 전국 관찰사에게 사서 수구령을 내렸다.
ᆞ조선 중기 광해군 때 누루하치가 보낸 국서를 보면 요동은 본시 너희 조선의 땅이다. 지금 명나라 사람들이 그 땅을 빼앗았데, 너희는 명나라가 원수인 것도 모르고 신복하고 있다하여 조선을 비웃었다.
ᆞ세종 때 훈민정음 제정 반대 상소를 올리면서 조종이래 중국을 사사하고 모두가 중국 제도를 본받아 왔는 데, 훈민정음이 중국에 전해지는 날에는 사대모화에 부끄러운 일이라 하였다.
ᆞ동방의 명현 이퇴계조차 명을 본조, 우리나라를 조정이라 불려, 우리 역사에 대해 단군 시대는 증명할 수없고, 기자가 봉해지고 나서 겨우 문자가 통했다. 삼국 시대 이전은 별로 논할 만한 것이 없다라고 폄하였다.
ᆞ이율곡은 명나라 군주를 우리 황상이라 하고, 명나라를 천조, 성조라 불렀다. 기사실기에 기자께서 조선에 이르시어 우리 백성을 천한 오랑캐로 여기지 않고 후에게 길러 주시고 부지런히 가르쳐 주셨다하고 단군의 출현은 문헌상 상고 할 수 없다라 하여 한민족의 상고사를 완전 부정하였다.
ᆞ실학파인 열하일기로 유명한 박지원은 명나라는 우리의 상국이다. 상국이 속국에 내리는 물건은 비록 터럭같이 미미할 것이지라도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이 그 영광이 온 나라를 움직이고 경사가 만세에 끼칠 것이다라고 하여 중국을 칭송하였다.
ᆞ실학파인 정약용도 조선의 명칭은 평양에서 시작하였다. 기자조선이 실존한 것으로 말하였다. 우리나라는 번국이니 마땅히 제도가 작아야 한다라고 하여 조선으 제후국이니 중국의 관제보다 작아야한다라고 하였다.
ᆞ최인은 조선은 한일합병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 이미그 이전에 한중합병으로 망하였다. 조상의 비문에 유명조선 즉 명나라에 있는 조선, 명나라에 속한 조선이라는 것이다. 조선 백성이 신민, 한문은 진서로서 한글은 언서로서 무시하였으니 한민족은 혼빠진 민족이 아닌가?
#인류 창세 역사와 한민족의 9천년사의 국통맥에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밝힌다.
출처:환단고기 출간 1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