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公有花 2014. 10. 8. 05:17

본관 김해. 자 자구(子具). 시호 양무(襄武). 영암 출생. 정유재란 중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 휘하에 들어가 용맹을 인정받았다. 그해 무과에 급제, 경상방어사의 막하로 들어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왜적을 만나 전공을 세웠다. 이듬해 전라병사 이광악(李光岳)을 따라 남원에 갔을 때 아버지를 무고하여 옥사시킨 한덕수(韓德脩)가 도원수 권율(權慄)의 비장(裨將)으로서 병력점검을 위해 온 것을 죽이려다 실패하였다.

모포(毛浦)의 만호(萬戶) ·남원판관 등을 거친 뒤, 서울에 가서 한덕수를 찾아 죽이려 했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어, 수년 간 투옥되었다. 1615년(광해군 7) 관무시(觀武試)에 급제, 고산첨사(高山僉使) 등을 거쳐 창성방어사에 이르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평정에 원수 장만(張晩)을 도와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에 책록, 학성군(鶴城君)에 봉해졌다. 이어 훈련원도정(都正) ·황해도병마절도사를 지냈으며,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출처: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