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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숭인 장군은 용장중에 용장

自公有花 2014. 10. 8. 07:57

임진왜란 용장중에 용장이 유숭인 장군이다. 1592년 경상도 함안군수로 성을 고수하고 베어 죽인 적병의 수가 47인에 이르렀으며, 당항포에서 왜군을 이순신과 협공하였다.

 

그해 9월 경상우병사로 승차하여 창원 동쪽 노현에서 2천여 명의 병력으로 왜군을 맞아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여 1,400명을 잃었다.

 

9월27일 창원성이 함락되자 사천현감 鄭得說, 가배량권관 朱大淸이하 잔여 병력 1백여기를 이끌고 진주성에 이르렀다.

 

그러나 진주목사 김시민은 “적병이 이미 어울렸으므로 성문을 엄하게 경계하고 있는데, 만약 조금이라도 열고 닫으면 창졸의 염려가 있을 것이니 주장께서는 밖에서 응원함이 옳습니다.”하며 성문을 열어주지 않자 그가 “너 김시민, 하늘이 실수를 해서 너를 살려준다 해도 이 유숭인이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하였다.

 

결국 성 밖에서 왜군과 중과부적으로 싸우던 중 전원 전사하니 그때 그의 나이 28세였다.

 

이때 의병장 곽재우는 목사 김시민(정3품)이 유숭인 병사(종2품)인 그를 진주성에 입성시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계책이 바로 진주성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니, 이는 족히 진주인의 복이다.”하였다고 전해진다.(출처:한국사)

 

 

 

 

 

 

 

최경회 [崔慶會, 1532~1593]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1567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영해군수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되어 금산, 무주 등지에서 왜병과 싸워 크게 이겼다. 이듬해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승진했으나 6월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9주야를 싸우다가 전사했다.

 

본관  해주(海州) 

자  선우(善遇) 

호  삼계(三溪) ·일휴당(日休堂) 

시호  충의(忠毅) 

활동분야  정치, 군사 

출생지  전남 능주(綾州) 

 

  

 

↑ 최경회 사당 / 전남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64호.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되어 큰 공을 세운 최경회 장군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본문

 

본관 해주(海州). 자 선우(善遇). 호 삼계(三溪) ·일휴당(日休堂). 시호 충의(忠毅). 능주(綾州) 출생. 1561년(명종 16) 진사(進士)가 되고, 1567년(선조 즉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영해군수(寧海郡守)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되어 금산(錦山) ·무주(茂州) 등지에서 왜병과 싸워 크게 전공을 세워 이듬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에 승진했다. 이 해 6월 제2차 진주성(晉州城) 싸움에서 9주야를 싸우다 전사했다. 좌찬성(左贊成)이 추증, 능주의 포충사(褒忠祠) ·진주의 창렬사(彰烈祠)에 배향되었다.

 

 

[출처] 최경회 [崔慶會 ] |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