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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룡
自公有花
2014. 11. 10. 06:53
1586년(선조 19) 무과에 급제했다. 1590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신립(申砬) 휘하로 들어가 이듬해 훈련원봉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방어사 조경(趙儆)의 돌격장이 되어 금산과 거창에서 일본군 500명을 격퇴시켰다. 이어 영남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의 부름을 받고 임시로 상주판관이 되었는데, 그때 일본군을 많이 격파한 공으로 상주목사 겸 감사군대장이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부름을 받고 대장으로 임명되어 9읍(邑)의 장관과 함께 금오산성을 지키고 고령에 나가 적을 격파해 적장을 참수했으며, 일본 장수 중 하나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군대를 보은 사암에서 수십 명 격살하고 그 공으로 경상우병사가 되었다. 또한 명나라의 장수 양호(楊鎬)의 선봉으로 울산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1598년 명나라 군대의 총병(摠兵)을 대행해 경상도 방면에 남아 있던 일본군을 소탕하여 용양위부호군이 되고 이듬해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임진왜란 후 경상도방어사·김해부사·밀양부사·중도방어사·경상좌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1610년(광해군 2)에 상호군, 1617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1622년 2월 통영의 진중에서 병사했다. 상주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출처:브리테니크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