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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록/별주부/도자기

自公有花 2014. 11. 14. 10:59

 

 

 

 

동편제 수 궁 가 (水 宮 歌)

<아니리>

갑신년 중하월에 남해 광리왕(廣利王)이 영덕전(靈德殿) 새로 짓고 대연을

배설(排設:베풀어서)헐제 삼해 용왕을 청하여 군신빈객(君臣賓客)을 좌우로

늘여안처 수삼일을 즐기더니 과음하신 탓이온지 용왕이 우연히 득병허야

백약이 무효라 홀로 앉아 탄식을 허시는디

 

<진양>

탑상(榻床)을 탕탕 뚜다리며 탄식허여 울음을 운다. 용왕의 기구(寄軀로)되

괴이한 병을 얻어 수정궁의 높은 집에 벗없이 누었은들 화타(華陀) 편작(扁鵲)

이 없었으니 어느 누구가 날 살릴거나 웅장헌 용성(龍聲으)로 신세자탄

울음을 운다.

 

<엇모리>

뜻밖에 현운(玄雲) 흑운(黑雲)이 ,궁정을 뒤덮고 폴풍세우가 사면으로 둘루더니 선의도사가 학창의(鶴 衣) 떨쳐입고 궁전을 내려와 재배 이진(再拜而進) 왈(曰),"약수(弱水) 삼천리에 해당화 구경가 백운 요지연의(白雲瑤池宴) 천년벽도(千年碧桃)를 얻으랴고 가옵다가 과약풍편(寡弱風便:아주 약하게 떠도는 소문)에 듣싸오니 대왕의 병세가 만만(萬萬), 위중타기로 뵈옵고저 왔나이다." 

<아니리>

용왕이 반기허사, "원컨데 도사는 나의 맥(脈)을 보아 황황으(이) 나의 병세에 특효지약을 자세히 일러 주시옵소서."

 <자진모리>

왕이 팔을 내어주니 도사 앉어 맥을 볼제 심소장(心小臟)은 화(火)이요. 간담은 목(木이)요 폐대장은 금이요 신방광 (腎膀胱) 수요. 비위(脾胃)난 토(土)라. 간맥(肝脈)이 태과(太過)허여 목극토하였으니 비위가 상하옵고 담성(痰聲)이 심허니 신경이 미약허고 폐대장이 왕성허니간담경자진(肝膽驚自盡)이라 방서(方書)에 일렀으되 비내 일신지 조종(脾乃一身之操縱)이요,담은 내일신지, 표본이라 심정(心情) 즉,만병이 식허고 심동 즉 만병이 생하오며 신경 곧 상하오니 무슨 병이 아니날까 오로칠상(惡露七傷)이 급하오니 보중탕(補中湯)을 잡수시오. 숙지황 주호 닷돈이요 산사육(山査肉) 천문동(天門冬) 세신(細辛)을 거토(去土) 육종용택사(肉종용택사 앵속화 각 한돈 감초 칠푼 수일승 전반 연용(水一升煎半連用) 이십여첩 쓰되 효무 동정(效無動靜)이라 설사가 급하오니 가감백출탕(加減白朮湯)을 잡수시오. 백출을 초구하야 서돈이요 사인을 초구(炒灸:뜸질)하야 두돈이요 백복령(白茯笭) 사향 오미자 해황 당귀 천궁, 강활 독활(獨活) 각 한돈 감초 칠푼 수일승전반 영욘 사십여첩을 쓰되 효무동정이라 신롱씨 백초약을 갖가지로다 쓰랴다는 지려 먼저 죽을테니 약을 한데 모일적으 인삼은 미감(味甘:맛 보기)허니 대보원기허고 지갈생진(止渴生津:갈증을 그치게 하는 생즙)허면 조영양위(造榮養胃:처음부터 위를 잘 다스려야)로다. 창출(蒼朮) 감온허니 건비 강위허고 제사재습(第四除濕)허고 겸치난비(兼治亂飛)라 감초는 감온(甘溫)허니 구즉 온중(灸則溫中:부드럽고 따뜻한 가운데 즉시뜸질)허고 즉사하 (生則瀉下:즉시 아래로 설사하고)로다. 침구로다 다스릴제 천지지상경(天地之上經:하늘과 땅 높게 날으리)이며 갑인 갑술시 담경유수(膽經幽遂)로주고 을일유시에 대장경 사약을 주고 영구로 주어보자 일심맥 이조해 삼외관 사임(四任)에 육공손(六恭遜) 칠후계(七後繼) 팔내관(八內觀) 구혈기(九血氣) 삼기(생기다)부치 팔물탕 자맥(自脈)을 풀어주되 효험이 없으니 십이경 주어보자 심장염천 천돌구미 거골 상원 중원 하원 신관(腎管) 단전 골육을 주고 족태음 비경(足太陰脾經) 삼음교(三元敎) 음능천(음낭천)을 주어보되 아무리 약과 침파(鍼破:침으로 종기를 쨈)를 허되 병세 점점 위중토다. 

단중모리>

도사 다시 맥을 볼제, "맥이 경동맥이라 비위맥이 상하오면 복중으로 난병이요 복중이 절여 아프기난 화병으로 난병인되 음황 풍병(淫荒風病)이라 여섯가지 기운이 동허야 손기산기(損氣疝氣)난 정음(正陰)이요 진경에 미(迷)난 정양이라 의무화동(醫務和同) 황달을 겸하였사오니 진세(塵世)산간으 토끼간을 얻으면 차효가 있으려니와 만일 그렇지 못하오면 염라대왕이 동성삼촌이요 동방삭이가 조상이 되어도 누루황 새암천 돌아갈 귀 허였소." 

<아니리>

용왕이 왈,"신롱씨 백초약은 어찌약이 아니되옵고 조그만한 진세 토끼 간이 약이라 하나이까 ?"도사 왈,"용왕은 진이요 토끼는 묘라 묘을손은 음목(卯乙損陰木)이요 간진술은 양토(陽土)라 하였으니 어찌 약이 아니되오리까" 수궁에는 토끼가 없는지라 용왕이 탄식을 하시는디, 

<진양>

왕 왈"연하다 수연(雖然:비록 그러하지만)이나 창망헌 진세간으 벽해 만경(碧海萬頃)밖으 백운이 구만리요 여산송백(驪山松柏) 울을 창창 삼척고분 황제으 묘(三尺孤憤 皇帝墓)라 토끼라허는 짐생은 해외일월으 밝은 세상 백운청산 무정처로 시비없이 다니넌 짐생을 내가어찌 구허리까 죽기는 쉽사와도 토끼는 구허지 못허겠으니 달리 약명을 일러를 주오." 

<아니리>

도사 엿짜오되,"용왕의 성덕(盛德)으로 어찌 성공지신이 없사오리까 ?"말을 마친 후 ,인홀불견 간 곳이 없지 용왕이 그제야 도승인줄 짐작허고 공중을 향하여 무수히 사례후에,수국 조정 만조백관을 일시에 모이라 허니 이 세상 같고보면 일품 제상님네들이 들어오시련마는 수국이라 물고기 등물들이 각각 벼슬이름을 맡어 가지고 들어오는디, 가관이었다. 

<자진모리>

승상은 거북 승지는 도미 판서 민어 주서 오징어 한림박대 대사성 도루묵 방첨사(蚌僉使:내시부의 종삼품 벼슬) 조개 해운군 방개 병사 청어 군수 해구 현감 홍어 조부장 조기 부별 낙지 장대 승대(성대) 청다리 가오리 좌우나졸 근근 모조리 상어 솔치 눈치 준치 멸치 삼치 가재 개구리까지 명을 듣고 어전에 입시허여 대왕에게 절을 꾸벅꾸벅 

<아니리>

병든 용왕이 가만히 보시더니, "내가 용왕이 아니라 오뉴월 생선전 도물주(都物主)가 되었구나. 허나 경들 중에 어느 신하가 세상에 나가 토끼를 구하여다 짐의 병을 구할소냐? "좌우 면면 상고(面面相顧) 묵묵 부답이었다. 

<중모리>

왕이 다시 탄식헌다 ."남에 나라는 충신이 있어서 할고사군(割股事君) 개자추(介子推)와 광초 망신(狂楚亡身:초나라를 속이고 목슴을 잃음) 기신(紀信)이는 죽을 인군을 살렸건마는 우리 나라도 충신이 있으련마는 어느 누구가 날 살리리오."정언 잉어가 여짜오되 "승상 거북이 어떠허뇨." "승상 거북은 지략이 넓사옵고 복판이 모두다 대몬고로 세상을 나가오면 인간들이 잡어다가 복판 띠여 대모장도(玳瑁粧刀) 미리개(밀이개) 살착(살쩍) 탕건 모독이 쥘 쌈지 끈까지 대모가 아니면 헐줄을 모르니 보내지는 못허리다. " 

<자진중모리>

"그럼, 방첨사 조개가 어떠하뇨?""방첨사 조개는 철갑이 꿋꿋 방신 지도(防身之道) 난 좋사와도 옛글에 이르기를 관방휼지세(觀蚌鷸之勢) 허고 좌수어인지공(坐收漁人之功: 관방휼 ~~ 인지공 : 즉 어부지리의 고사)이라 휼조라는 새가 있어

 

 

 

 

 

 

등장인물

 

- 토끼: 이기적인 면이 있지만, 재치가 있고 영리하다. 눈앞에 죽음이 닥쳐도 최선을 다한다.

 

- 자라: 용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충직한 신하. 하지만 죽음으로써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 용왕: 매우 이기적인 존재이며, 세상물정 잘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이다.

 

- 자가사리: 임금을 위하는 충직한 신하, 꼿꼿하고 강직한 성격을 가졌다.

 

 

 

* 별주부전 [鼈主簿傳] 조선시대 작자·연대 미상의 한글 고대소설.

 

《토끼전》《토생원전(兎生員傳)》《토(兎)의 간(肝)》이라고도 한다.

 

한문본인 《토별산수록(兎鼈山水錄)》《별토전(鼈兎傳)》 등 여러 이본(異本)이 있다.

다른 판소리 계통의 소설인 《춘향전(春香傳)》《심청전(沈淸傳)》 등과 같이 영 ·정조 시대에 형성된 작품으로, 판소리 《수궁가(水宮歌)》를 소설화한 것이다.

 

옛날부터 전하는 고구려의 설화(說話)인 《귀토지설(龜兎之說)》에 재미있고 우스운 익살을 가미한 내용으로 한글이 생기자 정착된 의인소설(擬人小說)이다. 이본에 따라서 내용이 약간씩 다르기는 하나, 우화적(寓話的)이고, 고사(故事)를 인용해가며 미사여구(美辭麗句)로 표현하여 전편에 희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점에서 공통적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토끼전과 별주부전의 줄거리가 다르다는 점.

 

 

- 토끼전줄거리

 용왕이 병이 나자 도사가 나타나 육지에 있는 토끼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고 한다.

용왕은 수궁의 대신을 모아놓고 육지에 나갈 사자를 고르는데 서로 다투기만 할 뿐 결정을 하지 못한다.

이 때 별주부 자라가 나타나 자원하여 허락을 받는다. 토기화상을 가지고 육지에 이른 자라는 동물들의 모임에서 토끼를 만나 수궁에 가면 높은 벼슬을 준다고 유혹하면서 지상의 어려움을 말한다.

이에 속은 토끼는 자라를 따라 용궁에 이른다.

간을 내라는 용왕 앞에서 속은 것을 안 토끼는 꾀를 내어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한다.

이에 용왕은 크게 토끼를 환대하면서 다시 육지에 가서 간을 가져오라고 한다.

자라와 함께 육지에 이른 토끼는 어떻게 간을 내놓고 다니느냐고 자라에게 욕을 하면서 숲 속으로 도망가 버린다.

어이없는 자라는 육지에서 죽거나 빈손으로 수궁으로 돌아간다.

 

- 별주부전 줄거리

 동해 용왕이 우연히 병이 들었는데, 어떤 약도 소용이 없었다.

그 때, 세 명의 도사가, 왕의 병은 주색(酒色)이 원인이라고 하며, 토끼의 생간을 먹어야 병이 났을 것이라고 처방했다.

문어와 자라(별주부)가 서로 토끼를 잡아 오겠다고 다툰 끝에 자라가 토끼를 잡아오기로 한다.

자라가 토끼의 그림을 가지고 육지로 나와 토끼를 찾는다.

자라가 토끼를 만나서 육지 생활이 위험하다고 강조하고, 용궁에 가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감언이설로 토끼를 유혹한다.

토끼는 자라의 유혹에 넘어가 자라 등에 업혀서 수궁(水宮)으로 들어간다.

용왕이 토끼를 잡아서 간을 내오라고 하니 토끼가 놀라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용왕은 토끼의 말을 믿고는 자라에게 토끼를 육지에 데려다 주라고 한다.

육지에 도달하자 토끼는 간을 빼어놓고 다니는 짐승이 어디 있느나며 자라를 놀리고는 달아난다.

자라(별주부)는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이후 용왕은 어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수궁에서 겨우 살아온 토끼는 경망스럽게 행동하다가 독수리에게 잡혔으나 또다시 꾀를 내어 위기를 모면한다.

 

 

 

 

토끼전안에는

지배층의 모습도 있고 서민층의 모습도 들어있다고 볼 수가 있다.

만약 용왕이 토끼의 꾀에 넘어가지 않았다면 또 다른 결말이 있었을테고

그렇담 이건 서민층이 속수무책 당하는 결말?

 

그리고 자라가 토끼간을 구해오지 못하겠다고 했다면?

이건 신하가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모습이니.. 

 

또한 토끼가 영리하지 않고 어리석었다면

어리석은 백성은 속수무책 당하기만 했을테고

 

 

고전소설이다 보니.. 다양하게 상상된다 ㅎㅎㅎ

 

 

출처 :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인가? | 글쓴이 : 꼬꼬요 | 원글보기

 

 

 

 

 

임진록 4-- 왕가(王駕)의 몽진(蒙塵)

 

상이 남필(覽畢)에 대경하사 제신다려 계교를 물으신대 백관이 황황하여 아무리 할 줄 모르더니 홀연 체탐군이 보하되,

“왜적이 벌써 용인(龍仁)지경에 이르렀다.”

하거늘 영부사 김대영과 판부사 허적과 체찰사 유성룡(柳成龍)과 도승지 이항복(李恒福)과 판의금 이덕형(李德馨) 등이 주하되,

“적세 이미 위급하였으니 청컨대 어가(御駕) 잠깐 평양으로 나아가 그 봉예(鋒銳)를 피하소서.”

상이 영부사 김대영다려 이르되,

“나의 박덕함으로 인하여 의외지변(意外之變)을 만나 종사(宗社)를 하직하고 골육이 분찬하기에 미치니 이 정을 어찌 참으리요, 본디 경의 충성을 아나니 내 아희를 데리고 함경도로 피난케 하라. 만일 창천(蒼天)의 도움이 계시면 다시 보리라.”

김대영이 복지 주왈,

“시운(時運)이 불행하여 이 지경에 미쳤사오니 신이 죽기로써 대군을 뫼셔 보호하리이다.”

인하여 하직하고 사대군(四大君)을 뫼셔 창황히 나올 새 앞이 어두워 길을 능히 분변치 못하더라. 상이 또한 내구(內廐) 말을 재촉하여 타시고 내전(內殿)을 거느려 궐문을 나실새 이양원(李陽元)으로 수성대장(守成大將)을 하이샤 이전(李?)과 변언수(邊彦琇)로 더불어 한가지로 지키라 하시고 김명원(金命元)으로 한강(漢江)을 지키게 하고 신석으로 부원수를 삼아 이양원을 좇아 도성을 진수하게 하시고 급히 서문으로 나시니 성중 백성이 늙은이를 붙들고 어린이를 이끌어 길가에 메여 어전(御前)에 이르러 여짜오되,

“우리 주상(主上)이 이제 신민을 버리시고 어디로 가려 하옵시나이까.”

하고 일시에 곡성이 천지 진동하니 그 경상이 참불인견(慘不忍見)이러라.

벽제관(碧蹄館)에 이르러는 하늘에 운무사색(雲霧四塞)하고 큰 비 붓듯이 오는지라, 백관이며 호종군졸이 비를 맞고 황황히 행하더니 마산역을 지나 임진(臨陣)을 건너 동파역(東坡驛)에 다달으니 장단부사(長湍府使) 구유현이 약간 음식을 장만하여 가지고 대가(大駕)를 기다리더니 배종군민(陪從軍民)이 여러 날 굶었는지라, 음식을 보고 어찌 체면과 인사를 생각하리요. 다투어 앗아 먹으니 능히 금치 못하여 상께 드릴 차담(茶啖)이 없는지라. 구유현이 가장 무료하여 가만히 도망하니라.

오 월 초일 일에 개성부(開城府)를 지나 금천(金川) 숙소하시고 초이 일에 평산(平山)을 지나 무산역에 쉬오시고 초삼 일에 황주(黃州)에 이르시니 황해감사 조인득이 본주 병사와 두어 수령(守令)으로 더불어 군사 수백을 거느려 대가를 영접할새 차담을 성비(盛備)하여 군신 상하가 비로소 기갈을 면하고 초사 일 중화(中和)에 숙소하시고 초오 일에 바야흐로 평양(平壤)에 이르시니 감사 송언신이 대가를 맞은 후에 군사를 조발하여 수성(守城)하기를 준비하더라.

차시 왜적이 이미 충주(忠州)를 함몰하매 군사를 네 길로 나누어 나아올새 왜장 평수정이 대군을 거느려 강을 건너 바로 경성(京城)에 다다르니 수성장 양원(陽元)이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더니 체탐군이 보하되,

“적장 평행장(平行長)이 또 대군을 거느려 이르렀다.”

하거늘 부원수 신각(申恪)이 이르되,

“적병의 형세 이렇듯 성하거늘 우리 사소한 군사로 외로운 성을 지키다가 만일 양식이 진하고 날이 오래면 능히 보전치 못하리니 일찍 성을 버리고 함경도로 들어가 군사를 초모하여 회복함을 도모함만 같지 못하다.”

한대 양원이 즐겨 듣지 아니하거늘 신각이,

“스스로 성을 버리고 달아나되 죄 비록 중하나 마땅히 다른 공을 세워 죄를 속하리라.”

하고 밤에 가만히 동문(東門)을 열고 함경도로 달아나니라.

평행장의 대군이 바로 한강에 이르니 도원수 김명원이 군사를 거느려 강변을 지키다가 왜병이 한강을 건너 바로 경성에 이르러 성을 급히 치니 이양원이 왜병의 형세를 보고 창황실조(蒼黃失措)하여 성을 버리고 달아나니 왜장 평행장 청정 등이 대군을 몰아 경성에 웅거하고 다시 청병함을 청하니 평수길이 첩서(捷書)를 보고 대희하여 즉시 대장 안국사 평정성을 불러 분부하되,

“이제 평행장 청정 등이 이미 호서(湖西)를 앗으며 조선왕(朝鮮王)이 평안도로 달아났다 하니 너희 양인이 각각 일지병을 거느려 나아가 청정 등을 접응하여 한가지로 평양을 엄습하라.”

양장이 청령(聽令)하고 각각 군사를 거느려 부산에 이르러 주야로 행하여 경성 가까이 이르러 둔병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성중에 들여보내어 청정 등에게 소식을 통하고 후에 군사를 나누어 혹 십 리씩 혹 이십 리씩 영채를 세우고 목책(木柵)을 많이 벌이고 각 관 창고를 열고 곡식을 수운(輸運)하여 군량(軍糧)을 삼으며 낮이면 금고(金鼓)를 울려 서로 응하고 밤이면 횃불과 등촉(燈燭)을 높이 달아 서로 비추며 도성민가(都城民家)와 각 마을에 불지르고 정?선릉(靖?宣陵)을 파니 참혹함을 뉘 능히 기록하리요.

차시 평수길이 종묘(宗廟)에 웅거하고 청정은 평행장으로 더불어 경복궁(景福宮)에 웅거하니 종묘와 사직에서 밤마다 신령(神靈)이 일어나 적병을 꾸짖어 보채니 능히 견디지 못하는지라. 평수정이 대로하여 종사를 불지르고 남별궁(南別宮)으로 옮아 머무르니 청정이 평행장에게 이르되,

“조선왕이 이미 평안도로 달아났으니 그대 일지병을 거느려 급히 나아가 평양을 치면 조선왕이 반드시 의주로 달아나리니 그대 모름지기 평양에 웅거하고 일체 따르지 말라. 오래지 아니하여 마다시 심안둔이 각각 군을 거느려 서해로 압록강에 이르러 마주 짓쳐 오리니 만일 이같이 하면 조선왕이 갈 곳이 없어 반드시 함경도로 달아날 것이니 내 또한 일지군을 거느려 함경도로 들어 각처 액구(隘口)를 매복하고 형세를 보아 가며 사람을 보내어 소식을 통하리니 그대는 쉬 움직이지 말고 다만 접응하기를 기다리라.”

평수정 평의지 두 장수를 불러 이르되,

“그대 등은 각각 일천 군씩 거느려 강원도로 들어가 험한 곳을 가리어 두었다가 나의 기별이 있거든 즉시 접응하라.”

하고 드디어 평조영 평조신으로 하여금 도성을 지키게 하고 평행장으로 더불어 각각 일천 군씩 거느려 발행할새 경복궁을 불지르고 서북으로 길을 나누어 나아가니라.

이때에 평의지 강원도로 나아갈새 제장(諸將)을 불러 이르되,

“강원도 삼척(三陟) 땅에 있는 이지함(李之?)은 가장 신기한 사람이니 만일 겁칙하려 하다가는 우리에게 해가 미칠 것이다. 삼척 근처에는 군사를 놓치 말라.”

하더라. 원래 이 사람은 토정(土亭)선생이라. 당초에 평의지가 조선을 탐지하러 왔을 적에 강원도를 편답하고 삼척 땅에 이르러 토정을 만나매 토정이 왜인인 줄 알고 죽이고자 하거늘 평의지 복지하여 이르되,

“이는 천수(天數)라. 비록 나를 죽이나 무엇이 유익하리요, 전두(前頭)에 삼척은 침노치 아니하리라.”

하였는 고로 인하여 삼척은 병화(兵禍)를 만나지 아니하니라.

차시 좌의정 윤두수(尹斗壽)와 도승지 이항복(李恒福)이 주왈,

“적장 청정과 평행장 등이 대군을 거느려 장구(長驅)하여 나아오니 그 뜻이 평양성을 겁측코자 함이라. 원컨대 전하는 미리 방비하소서.”

상이 즉시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을 허체(許遞)하시고 금의 대장 신길(申?)로 대장을 하시고 유극양(劉克良)으로 부원수를 하시고 첩지 중추부사 한응인(韓應寅)으로 후응사를 삼으사 각각 일군을 거느려 임진강을 지켜 도적을 건너지 못하게 하니라. 삼 장이 명을 받자와 즉일 군사를 거느려 임진을 향하여 나아가니라. 우의정 유홍(兪弘)이 주왈,

“부원수 신각이 도성을 지키었다가 이양원의 명을 듣지 아니하고 도망하여 경성이 함몰케 하오니 그 죄 불용(不容)이라, 원컨대 선전관을 보내어 그 머리를 베어 다른 사람을 징계하소서.”

상이 그말을 좇으사 선전관을 보내어 신각을 버히라 하시니라.

재설, 부원수 신각이 경성을 떠나 함경도로 들어가 안변(安邊) 등처 군사를 거두워 도로 도송으로 향하더니 강원도 지경에 이르러 왜적 이유를 만나 힘써 싸워 도적의 수급(首級) 육십여 수를 버히고 어지러이 짓치니 이유가 대패하여 달아나거늘 신각이 뒤를 따라 편전(片箭)으로 이유를 쏘아 죽이니 남은 군사 사면으로 흩어지거늘 각이 승전하여 나아가는 표문(表文)을 닦아 평양으로 보내고 군사를 재촉하여 도성을 향하더니 중도에서 선전관을 만나매 성지(聖旨)를 전하고 각을 베어 돌아가니 일군이 통곡하고 각각 흩어지니라. 적기 아국에 들어옴으로부터 한 번 패함이 없더니 신각이 비로소 이기매 인심이 대열하더니 홀연 각의 죽음을 듣고 아끼지 아닐 이 없더라.

이때에 신각의 승전한 표문이 평양에 이르니 상이 대희하사 즉시 신각의 죄를 사하시고 사람을 보내어 주야 행케 하였더니 사자가 중도에서 선전관을 만나매 벌써 신각을 죽이고 돌아오는지라, 하릴없이 평양에 이르러 그 일을 상달하니 상이 차탄하시고 유홍을 대책(大責)하시니라.

차시 도원수 신길이 유극양으로 더불어 임진(臨陣)을 지키더니 김명원이 한강에서 도망하여 평양으로 돌아오다가 인하여 임진에 머물러 신길로 더불어 한가지로 군무를 의논하더니 홀연 보하되 왜적이 이르렀다 하거늘 신길이 군사를 벌여 진치고 선척(船隻)을 서편 언덕에 매고 지키기를 엄히 하는지라. 왜장 평행장이 먼저 이르러 물을 건너고자 하되 선척이 다 서편 언덕에 있는지라, 다만 물을 격하여 조총을 발하거늘 부원수 유극양이 방패를 끼고 편전으로 적병을 무수히 죽이니 적이 놀라 두어 리(里)를 물러 진치고 정히 조심하더니 문득 한 계교(計巧)를 생각하고 즉시 편녕하여 일시에 군막을 헐고 삼십리를 물러 진치고 제장으로 더불어 의논 왈,

“삼십 리 물러 퇴병하는 형상을 지어 적군을 유인하고 그대 등은 각각 일지군을 거느려 좌우 산곡(山谷)에 매복하였다가 적군이 승세하여 물을 건너 또 오거든 일시에 내달아 그 뒤를 끊고 내 문득 정면으로 치면 가히 전승함을 얻으리라.”

한대 제장이 그 말을 좇아 각각 준비하더라.

이때 신길이 김명원으로 더불어 의논 왈,

“적이 오래 상거하매 군량이 진하여 물러갔으니 만일 밤을 타 가만히 물을 건너 그 뒤를 엄습하면 반드시 공을 이루리라.”

한대 유극양이 이르되,

“왜적이 본디 간사한 꾀 많은지라. 이제 따르면 행여 간계를 가질까 두리나니 모름지기 굳게 지킴이 양책(良策)일까 하노라.”

신길이 꾸짖어 왈,

“네 어찌 어지러운 말을 내어 군심을 태만케 하느뇨, 만일 다시 영을 어기는 자 있으면 당장 버히리라.”

하니 유극양이 감히 다시 이르지 못하고 다만 궁노(弓弩)를 수습하여 신길의 뒤를 따라 물을 건너니라.

이때에 신길이 김명원 한웅인을 머물러 본진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일군을 거느려 차야에 가만히 물을 건너가니 적병이 간데없는지라. 마음에 가장 기뻐 군사를 거느려 삼십 리를 가더니 홀연 방포 소리 나며 화광(火光)이 충천한 가운데 청정이 평행장으로 더불어 각각 일지군을 거느려 짓쳐 내달아 일진을 엄살(掩殺)하니 신길이 크게 놀라 급히 군사를 돌이켜 임진 물가에 이르니 원래 평행장이 거짓 군사를 물리는체하고 가만히 일군을 거느려 뒤에 매복하였다가 아군이 물러 멀리 감을 보고 급히 군사를 몰아 강변에 이르러 신길의 건너온 배를 앗아 타고 물 건너 신길의 진을 엄습하니, 김명원이 한웅인으로 더불어 죽도록 싸우다가 군사를 다 죽이고 겨우 목숨을 도망하여 평양으로 돌아가니라.

차시 신길이 강변에 이르러 선척(船隻)이 없는지라. 경황(驚惶)하더니 적의 복병이 상하 강변으로 좇아 이르러 어지러이 짓치고 청정 평행장 등의 대군이 함께 협공하니 아군이 왜인의 창에도 상하며 서로 짓밟아 죽으며 물에도 빠져 죽는 자가 무수하더라. 신길이 평생용력을 다하여 좌충우돌하여 적군을 헤치다가 마침내 도적의 철환을 맞아 죽으니라, 부원수 유극양이 뒤를 좇아 힘세 싸우더니 신길이 죽고, 적군이 함몰함을 보고 앙천탄왈(仰天歎曰),

“주장(主將)이 일찍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이렇듯 패몰(敗沒)하니 누를 한하리요.”

하고 드디어 말을 버리고 한 언덕을 의지하여 활로 왜적을 쏘아 죽이더니 살이 진하고 도적이 물밀 듯 짓쳐오니 극양이 탄왈,

“내 어찌 차마 도적의 욕을 보리요.”

하고 스스러 목찔러 죽으니라, 평행장 등이 또한 임진을 건너 동파(東坡)를 지나 한성역에 이르러 군사를 나누어 두 길로 나아갈새 청정은 일군을 거느려 북도로 향하고 평행장은 평양(平壤)으로 향할새 함성과 고각(鼓角)이 산을 움직이고 기치창검(旗幟槍劍)은 폐일(蔽日)하였더라. 평행장 등이 행하여 송도?금천?평산?서흥?봉산?황주를 지나 중화(中和) 고을에 이르러는 평양이 멀지 아니한지라. 체찰사 유성룡이 백단 만호 임도정을 하여금 대동강에 있는 배를 다 잡아 언덕에 매고 군사를 조발하여 성을 지키게 할새 왜적이 만일 물가에 이르면 중군이 일시에 쏘니 적이 감히 나아오지 못하더라.

재설, 청정이 대군을 휘동하여 함경도로 향할새 동파역에 다다르니 산곡 중으로서 두어 사람이 나오다가 왜병을 보고 황망히 달아나거늘 청정이 군사로 하여금 그 사람을 잡아다가 달래어 왈,

“네 만일 바다로 가는 길을 가리키면 마땅히 중상하리라.”

한대 그 사람이 겁하여 길을 인도하거늘 청정이 대군을 몰아 산곡 속으로 토산을 지나 오릿고개를 넘어 안변 덕원으로 향할새 낮이면 사람을 문득 만나 해하거늘 고을의 수령들이 망풍하여 도망하는지라. 청정이 드디어 함흥을 향하더니 북병사 안국양(韓克誠?)이 청정의 대군이 이름을 보고 황망히 경흥 경원 회령 종성 온성 부평 육진(六鎭) 군사를 조발하여 해정창으로 나아가더니 정히 청정의 대군을 만나 양군이 대진하매 안국양이 먼저 보군으로 하여금 각각 방패를 끼고 왜병을 향하여 일시에 쏘니 적병이 능히 대적지 못하여 뒤로 잠깐 물러가거늘 국양이 마군(馬軍)을 놓아 짓치니 북도 마병이 본디 말에 익숙할 뿐 아니라 또한 용맹한지라, 일시에 말을 달려 적진을 충돌하여 왜병을 무수히 죽이니 청정이 대패하여 군사를 태반이나 죽이고 달아나거늘 국양이 군사를 몰아 뒤를 따르더니 청정이 달아나다가 산곡 중에 들어가 진치고 굳이 지키거늘 국양이 산세(山勢) 험준함을 보고 군사를 물려 너른 들에 영채를 세우고 군사를 쉬게 하더니, 차시 왜장 경감로가 일지병을 거느려 북도에 들어가 길주 명천 등처를 함몰하고 장차 함흥으로 나아가더니 청정의 위태함을 듣고 군사를 몰아 청정을 접응하여 전후로 협공합을 언약하니 청정이 대희하여 이날 밤에 군사를 내어 아군의 앞진을 치고 경감로도 그 뒤를 엄습하니 북군이 비록 용맹하나 전후로 대적치 못하여 각각 명을 도망하는지라. 안국양이 패잔군(敗殘軍)을 거느려 철령(鐵嶺)에 올라 잠깐 쉬더니 차야에 적이 가만히 영상(嶺上)에 불을 놓고 짓쳐 올라오니 북군이 창령싸움에 이미 곤하였는지라. 국양이 나와 불을 무릅쓰고 힘써 싸우더니 남녘에 홀로 불이 없거늘 그곳을 향하여 들어가니 적이 뒤를 따라 크게 엄습하니 아군의 죽는 수를 알지 못하더라. 국양이 군사를 다 죽이고 필마로 함흥으로 달아나거늘 청정이 군사를 몰아 남병영에 이르니 병사 이욱이 대경하여 갑산(甲山)으로 달아나거늘 청정이 드디어 군사를 나누어 여러 고을을 웅거하여 근본을 삼으니 형세 태산 같더라.

차시에 세자(世子) 대군(大君)이 함흥 계시더니 경성장교 국경인(鞠景仁)이라 하는 놈이 불측무도(不測無道)하여 몹쓸 흉계를 품고 저와 의합한 동료 십여 인으로 더불어 가만히 의논하여 왈,

“이제 조선이 거의 왜국이 되어 회복할 세(勢) 없이 이미 국수(國壽)가 진하였는지라. 어찌 서산의 낙일(落日)을 기다리리요. 동령(東嶺) 새달을 좇으면 사랑치 아니하리요. 우리 등이 이제 대군과 안국양을 사로잡아 왜진에 투항하면 반드시 중상이 있으리라.”

하고 세자 대군 사처에 들어가 거짓 창황한 빛으로 여짜오되,

“적장 청정의 대군이 벌써 성하(城下)에 이르렀사오니 급히 산중으로 들어가 피난하소서.”

세자 대군이 대경하여 즉시 중신 김대영(金貴榮) 황정욱(黃廷彧) 등과 감사 유영립 등으로 더불어 일시에 성문을 내달아 황망히 달아날새, 이때 날이 어두웠는지라. 국경인이 길을 짐짓 인도하여 못 가운데 빠지게 하니 매복하였던 동류가 일시에 내달아 결박하여 말게 싣고 북영으로 들어가 청정에게 드리니 청정이 대희하여 국경인에게 벼슬을 주고 그 남은 이는 각각 중상하니라.

재설, 남병사 이은이 갑산 고을에 있더니 갑산좌수 주이남이 국경인의 벼슬하였음을 듣고 스스로 생각하되,

“이런 시절에 굴기(?起)하기를 도모치 아니하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리요.”

하고 밤들기를 기다려 칼을 감추고 이은의 하처에 들어가 보니 은의 종자(從者)가 다 잠이 깊이 들었거늘 칼을 뽑아 이은의 머리를 베어 북영에 들어가 청정에게 드리니 청정이 대희하여 즉시 이남으로 길주부사를 하이시고 인하여 문왈,

“국경인의 잡아온 사람 중에 너의 친한 사람이 있느냐.”

이남이 감사 유영립의 맨 것을 끄르며 왈,

“차인이 전일 사지(死地)에 들었을 제 날을 살려낸 사람이니 구하여 은혜를 갚고자 하나이다.”

청정이 즉시 놓아 보내니 유영립이 목숨을 겨우 보전하여 평양으로 돌아오니라.

재설, 경상도 순찰사 이일(李鎰)이 충청도로 좇아 강원도로 들어가니 성중이 비었고 각 읍을 두루 돌아 사람을 모으려 하되 한결같이 비었는지라. 인하여 북도로 들어가니 청정의 군사 함경 일도에 미만하여 빈 곳이 없어 영채를 세웠는지라. 진실로 접촉할 곳이 없으매 하릴없이 갑산으로 좇아 평안도로 넘어 양덕 명산을 지나 평명에 이르니 의복(衣服)이 남루하여 머리에 헤진 전립(戰笠)을 쓰고 발에는 초리(草履)를 신고 손에는 다만 한 자루 장검(長劍)을 쥐었는지라, 상이 인견하사 전후수말(前後首末)을 물으시고 차탄하시기를 마지아니시니 백관이 아니 측연(惻然)할 이 없더라.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이르되,

“그대 가히 수백 군을 거느려 나아가 영구대 아래 여흘[灘]을 굳게 지키라.”

한대 이일이 즉시 군사를 거느려 영구대를 찾아가더니 길을 잃고 강서(江西)로 향하다가 평양좌수 김윤을 만나 길을 물으니 만경대(萬景臺)를 가리키거늘 이일이 여흘 속을 찾아가니 왜장 평수맹이 군사를 거느려 여흘을 건너고자 하거늘 이일이 강변에 진치고 군사로 하여금 일시에 쏘라 하니 군사 겁내어 능히 쏘지 못하는지라. 이일이 또한 활을 잡아바라며 쏘니 시위를 응하여 왜병이 무수히 죽는지라. 평수맹이 능히 저항치 못하여 즉시 물러가거늘 이일이 인하여 그곳을 굳게 지키니라.(출처:한국고전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