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여러분의 눈물 젖은 돈이 조국의 발전 종잣돈 됐다.

自公有花 2014. 3. 29. 08:04

한국경제개발 원인제공은 독일부루케수상,

 

한국 경제발전을 위해 청사진을 제시하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을 당시 어느 나라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작금 친일매국노 후손들이 입법 행정 사법 지도부를 장악하게 되어 일제식민지지배 정당화 시도가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그래서 보리고개가 있었고 많이들 굶주려 죽기도 했을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머나먼 독일까지 가서 호소 하여 최초로 독일 루부케수상이 경제개발 차관(돈)을 제공하는 결정을 해주었었다.

 

파독광부들과 간호사들의 성실함에 독일인들은 우방으로서 지지를 준것이다.

 

독일 루부케 수상의 경제개발차관제공에 일본과 미국이 뒤질세라 독일차관을 획득하고자 서둘러 차관제공과 경제협력에 달려들었든 것이다. 만일 독일 루부케의 경제지원이 없었더라면 일본과 미국이 지원했을까?

 

미국은 당시 한국은 식량이 모자라는 나라이니 공업을 포기하고 농업국가를 지향하라고 했었으며, 일본은 상환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투자를 막고있었지만, 독일의 차관제공에 눈독을 들여 일본이 경협에 나썻든 것이다.

 

미국과 일본 영국 자유진영이 한국투자를 망서릴때 독일의 루부케수상은 과감한 박정희 지원을 약속하는 통큰 결정이 한강의기적의 밑거름이 된것은 분명하다.

 

감동을 받은 박정희대통령도 경제개발기반을 독일식 마이스터제도에 영향받아서 공업고등학교를 중시하는 공업화를 추진한 동기가 되었다.

 

국내외 최근에는 경제발전이 역사적 흐럼이라는 주장과, 미국의 반한 프레이저 보고서를 금과옥조로 어리썩음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또 일본의 식민지통치가 근대화 해주었으니 감사표시로 독도 침력을 용인하고 침묵하자는 주장도 친일매국행위 후손들 사이에서 있을법해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독일의 차관이 근대화의 씨앗이 되었다는 점이고 식민지 통치나 일본은 피해만 주었다는 점이다. 일본과 교역을 시작한 이래 한번도 흑자가 없는 만년적자가 한국땅을 팔든 사람을 팔아야 하는게 아니고 뭔가? 일본이 한국근대화에 방해하면 했지 뭔도움된다는 것이요

 

한국인들의 근면성과 성실성에 독일인들이 감동받아 성공의 기초는 의외로 쉽게 이루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일본덕이라고 감사하고 싶나봐요

 

독일인들이 한국인들에 감동한 성실한 모습이 조국 한국에서 한강의 기적 경부고속도로 자동차 중화학공업 기초가 된 것이다. 물론 가까운 일본의 산업기술을 모방하고 복사하는게 쉬웠다고 해서 일본의 공이라는 것은 잘 못된 역사인식이다.

 

식민지 조선총독부령을 법률로 계승한 작금 이땅이 전과자 천국이요 뭐든지 뻑하면 고소하고 특검하자고 하는 사법에 모든 것을 맏기자고 한다. 이처럼 일본의 식민지 통치 법률과 제도로 인해 엄청난 고통에 빠진 것이다.

 

일제가 조선인을 모두 범죄시하고 조선인 땅을 강탈하기 위한 사법재판제도 아무데나 붙이면 붙는 가압류제도 채권추심제도 형사제도 조선말로 변론하지 못하게한 변호사제도 법정에서 지금도 말을 못하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

누구를 위한 사법제도며 판사제도인가 다 일본인들 토지강탈을 위한 제도가 아직도 사법으로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검찰과 법원의 불신도 약 60%가 넘는다는 보도도 있으니 누구도 불신하고 전국민을 범죄자로 보는 시각의 수사기관과 사법제도에서 덕보고 사는 몇몆이 일본의 천황에게 감사할 것인가ㅡㅡㅡ

 

전국민이 참여한 선거를 댓글로 부정선거라고 억지를 사법기관에 맏겨 놓고 연일 장외투쟁으로 저주와 욕설이 이어지고 있는 이런 사법 풍토가 식민지 무시무시한 사법맹신 탓이 아니고 무었이랴ㅡㅡ

 

독일서 법률과 제도도 직수입했었어야 했는데ㅡ제철소 고속도로 중화학 그런거만 배워 올게 아니라 식민지 사법법전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로이 했더라면 지금쯤 세계제일의 국가가 되었을 터인데 ㅡㅡㅡ

 

2013.11.12.배영규

 

 

 

 

朴대통령, 독일 방문] "여러분의 눈물 젖은 돈이 祖國의 종잣돈 됐다"

프랑크푸르트=최재혁 기자 | 2014/03/29 03:00

가-가+

박근혜 대통령은 28일(현지 시각) 독일 방문 마지막 날의 일정을 프랑크푸르트에서 마쳤다. 박 대통령은 프랑크프루트에서 1960~70년대 파독(派獨) 광부와 간호사 대표 18명과 만났다. 이어 이들을 포함해 재독(在獨) 동포들과 간담회를 갖고 그들을 격려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동포간담회 연설에서 "여기 계신 동포 1세대인 파독 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 여러분은 땀과 눈물로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만들어 주셨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여러분의 피와 땀이 묻은 돈을 송금해 주신 것이 조국의 산업을 일으키는 종잣돈이 되었고 정직하고 묵묵하게 일하는 여러분의 모습은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바꿔 놓았다"고 했다. 연설을 경청하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 중에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가 적잖았다.

 

 

박 대통령에게 파독 광부와 간호사는 '각별한 사람'들이다. 박 대통령은 작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파독 근로자를 베트남 참전 용사, 중동 파견 근로자와 함께 한국 경제의 기초를 닦은 사람들로 꼽았다. 역대 대통령 중 취임사에서 파독 근로자를 언급한 것은 박 대통령뿐이다. 파독 근로자 출신 3명을 취임식에 특별 초청하기도 했다.

 

50년 전인 1964년 12월 10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서독 루르 지역의 함보른 탄광을 방문해 300여명의 우리 광부와 500여명의 간호사를 격려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서독 정부로부터 1억4000만마르크의 상업차관을 빌렸는데, 파독 근로자의 임금이 그 담보였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광원 여러분, 간호사 여러분, 가족이나 고향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 알지만…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하여 번영의 터전만이라도…"라고 말하다 목이 메어 연설을 중단했다.

 

50년이 지난 이날 박 대통령은 독일 교포들에게 '조국의 통일'을 얘기했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북한 주민과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큰 축복일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여기 있는 동포들 가운데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감격의 현장을 지켜본 분도 있을 것"이라며 "이제 그 길을 우리가 가야 한다. 독일 동포 여러분이 그 길에 적극 성원과 지지를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1963년부터 1977년까지 광부 7936명, 간호사 1만1000여명이 돈을 벌기 위해 서독으로 건너갔다. 파독 근로자 출신 가운데 현재 3300여명이 독일에 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생활 밀착형 영사 서비스를 교포 사회에 제공하겠다"며 "독일 국적을 가진 자녀들이 한국 체류 비자 문제로 한국에서 활동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들었는데 해결 방안들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밤 헤센주 정부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한 뒤 5박7일간의 네덜란드·독일 순방을 마치고 귀국 길에 올랐다.

 

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