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임진왜란의 역사 왜곡은 일부 집권층에서 자행되었다. 누구를 위해서 역사 왜곡이 필요한 것인가?
선조 대왕 이연은 송익필 정철과 정여립 역모 사건을 날조하여 무고한 양민 2천여 명을 법에 이름으로 살해하는 만행을 즐긴 살인자에 불과했다. 중국인보다 더 성리학을 즐기고 공자 왈 맹자 왈 할 정도로 당시 지도층이 머리가 비상했고 아이큐는 300이 넘었었다. 그러니 백성들이 무슨 전쟁이 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경상도 군졸은 겁쟁이라고 할 만큼 동인이 머리가 좋고 유능했음에도 이들은 무지했다.
도요토미가 중국, 인도를 비굴하게 구질구질하게 정벌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므로 멋지게 용맹한 가토를 주 선봉장으로 선봉을 세운 정유재란은 영남 의병 죽창 부대라는 복병을 만나 부산항에 고립된 채 조선인 짊꾼마저 잡아먹을 정도의 참극이 '케이넨 일기'에 등장한다. 일본군이 일본군 전사자를 먹어야 할 정도로 곤경에 처했다. 일본의 앞잡이 손문욱의 대 활약으로 칠천해전을 성공 시켜 일본군의 퇴로를 겨우겨우 열어 나갔다.
류성룡은 일본 사신 귤강강의 영접사로 예조판서였었으며 전란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선조 대왕은 무능한 것이 아니라 무지했기에 도요토미와 협상의 책임 있는 관료가 나서야 함에도 끝내 조선은 역관(중인) 양신을 사신으로 보내 당장의 위급함만을 모면하려 하였기에 조선의 입장이 없었었다. 산적한 조선인 포로 송환과 이 씨 왕실 손주들의 송환 협상을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사실은 일본이 두려워 누구도 사신으로 나서지 않아서였다. 사명대사와 양신을 사신으로 보내 국사를 유기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국가 간의 전쟁 종전 협상을 회피했었다. 사천성 시마즈 전투가 만주에서 벌어졌더라면 그런 전투 하나로 명나라는 붕괴하였을 것이다.
무지하고 무능한 괴뢰 조정에서 회전문 인사로 불리는 전쟁 책임자 김성일을 초유사로 돌려막았다. 외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만전술이었다. 제 백성을 탄압하여 고혈을 빨아먹기에만 급급하여 악마의 경전 육법전서만 외우면 잘사는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재물을 빼앗기 위해 천륜을 갈라 감옥에 가두는 만행을 법에 이름으로 자행하는 무책임한 괴뢰 조정의 고통으로부터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구국 전선에서 살아온 나날이 역모죄의 누명이었다.
1597년 4월 부산항에서 해로가 봉쇄되어 굶주린 병사들이 복어를 내장채 끓여 먹다가 복어 독에 중독돼 많은 병사를 잃게 되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복어를 먹는 것을 일본 법으로 금지를 했다. 배고픔을 이겨내지 못한 일본군 장수들이 부산 바다에서 통통하게 생긴 흔한 물고기를 잡아 맛있게 먹고 굶주림의 허기를 채웠다. 지천으로 흔한 물고기는 다름 아닌 복어였다. 다음날 많은 일본군이 죽었다. 놀란 도요토미는 조선에서 물고기에 독이 있으니 먹지 말라는 명령을 긴급히 내린다.
심유경 석성 명나라의 입장은 분명하다. 무력으로 일본을 제압할 수 없기에 일본의 요구는 모두 들어주어 전선을 한반도 이내에서 억제하기 위해 일단 시간벌기이다. 어리석고 무지한 선조 대왕과 동인은 70만 대군을 동원하여 일본군을 압살해 달라는 것이었다. 심유경이 보기에 당장 1만 명분 식량도 없는 주제에 70만 대군을 동원해 달라는 선조 대왕의 요구에 기가 막힐 일이지만, 속으로만 비웃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조선이란 나라에서는 백성에게 눈을 낮추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 양반은 경작 반수(임대료) 소득으로 존립하고 중인(중소기업)들은 미래를 전혀 바라볼 수 없는 저임으로 생활이 없는 노동시간을 강요당했다. 밤낮이 따로 없으니 퇴근 후 자기계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대부분이 인건비에서 쥐어짜서 수익을 내는 구조다 보니 외거 노비던 관노에게 눈을 내리라고 생활의 질을 낮추라고 강요하고 소금값이나 올려 간접세나 뭉텅 뜯어내는 게 창조 조선의 비전이었다. 도요토미는 질그릇에 대나무 통에 밥을 먹는 백성의 질을 향상하고자 전쟁을 하고 도공을 납치하여 1백 년의 기술 틈새를 좁히며 눈을 위를 쳐다보라며 노비 약탈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사대부는 노비들을 사오정이라면서 45세가 되면 길들인 노비들을 내보냈고, 자신들 경장 반수(임대료)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쥐어짰다. 사실 이 수입의 반절은 국세임에도 징수하지 않았으며, 백성의 목구멍에 간접세를 부과해서 재정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었다. 경작반수의 소득의 반절은 국세로 들어와야 할 것이나 온갖 핑계로 징수하지 않았다. 양반들의 밀약이고 자신들 수입에는 세금을 걷지 않는 것이 법치이며 공평과세라고 우겼었었다.
또 용산에 대형 참사가 났다고 지랄들이다. 빈둥빈둥 멀쩡히 있다가도 어디 불났다 참사 터졌다 하면 뒷북행정 난리를 치면서 숙박업소나 사업장에 무슨 점검 한다고 난리 부루스다. 왜냐고? 삥 뜯기 위해서 아닌가? 권력이 관청에 있으니 사고를 핑계로 사업허가 죽일 수 있는 생살여탈권이 돈이다. 누가 일부러 화재 내는 사업자가 어디 있겠나? 불나면 업자는 망하니, 모두 화재예방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게 예방만으로 되는 일인가? 대형 참사가 돈이다.
조선이란 나라는 이미 나라이기를 포기했고, 왕도 조정도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었다. 정치인과 사대부(대기업 재벌) 1%를 위해 백성을 노비로 생각하였다. 공자 왈 맹자 왈 중국인보다 중국어에 똑똑하였을 정도로 유능하였으며, 멋대로 경전인 육법전서도 자기 유리한 데로 정하고 이건 뭐 더러워서 이 나라를 떠나는 게 살길이건만 그럴 수 없으니 백성은 독안에 갇힌 신세였었다.
꼴통 국가 신분제 고수세력 이민족에 의해 겨우 근대화됐으나 이민족이 떠난 후에는 동족끼리 수백만 명을 학살하고, 세계 유일한 검찰 권력 군인 왕조 국가를 수립하고 뿌리 깊은 미개함으로 전 세계적 비웃음거리로 노비에게 양복을 입혀 부려 먹는 지도층의 머리 회전이 너무빠른 위대한 민족이다.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 위해 역사의 재평가를 위한 다큐멘터리 역사 소설은 명량이라는 허구 앞에서 진실을 찾아가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