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기록으로 보면, 임진왜란 전쟁의 승패를 가른 전투는 명량 노량 한산도대첩이 아니다, 양차 진주성 전투로 1차 진주성 전투에 설에게 패배한 일본은 전력을 다해 2차 침공을 했고 결국 조선 측이 패배했지만, 그 규모는 세계 군사적으로 큰 규모의 희생이 있었다. 하시바 히데카츠의 사망으로 격분한 일본군이 이성을 읽고 진주성의 백성 수만 명을 몰살시켰다.
그때까지 일본군에게 호의적이던 조선의 민초들이 설에게 몰려갔다. 이로 인해 일본군이 어쩌지 못하고 물러난 것이었다. 부상진전투에 부상당한 하시바 히데카츠가 퇴각하면서 마지막 안간힘을 다한 진주성 전투가 임진왜란의 승패를 가른 전투였다.
서예원 진주목사의 용맹 때문에 그의 머리를 도요토미가 가져오라 했으며 실제 전투에서 분전하였음을 입증할 사료들이 많았습니다.
일본군에게 피해를 입힌 장수들이 아주 나쁘게 기록된 한국역사 입장입니다.즉, 일본에 항복한 장수는 용맹하고 영웅이고 저항한 장수는 비겁자거나 도망자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식민지를 거치면서 당연시 되었겠죠
명량 왜곡과 진실에서 그 이유를 밝히고 서에원 장군의 억울함을 충분히 밝혔습니다.일제시대의 역사에 빠진신분들에게 진실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아래는 펌글입니다. 호남인은 용맹하고 경상도장수는 겁쟁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감정이 들어간 공정을 잃은 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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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진주성 전투
이 전투는 1593년 6월 20일부터 29일까지 열흘 동안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투로..
경상우감사 김륵, 순변사 이빈, 성주 목사(星州牧使)로 임명된 의병장 곽재우등이
임금의 명령을 거역하면서 까지 공성전(空城戰)을 주장하면서 일본군관의 전투를
서로 회피하자...선조가 전라도군대에 진주성을 지킬것을 명하게 되는데...
김천일(金千鎰) 창의사(倡義使) (우도 절제사-친아들 상건과 함께한다.)
최경회(崔慶會) 경상 병사(좌도 절제사)
황진(黃進) 충청 병사 도순성장(都巡省將)
장윤(張潤) 사천 현감(좌 의병부장)
임희진(任希進) 해남 의병장(전투대장)
심우신(沈友信) 영광 의병장(전투대장)
이종인(李宗仁) 김해 부사(부장)
고종후(高宗厚) 복수 의병장(복수대장) -호남의병장 고경명의 아들,
오유(吳宥) 복수 의병부장(전투부대장)
민여운(閔汝雲) 비(飛) 의병장(부장)
이계련(李繼璉) 의병장(전투부대장)
강희보(姜希輔) 표(彪) 의병장(부장)
강희열(姜希悅) 분(奮) 의병장(전투대장)-강희보와 강희열은 광양출신으로 형제임,
이잠(李潛) 적기(敵氣) 의병부장
고득뢰(高得賚) 우 의병부장(부장)
양산숙(梁山璹) 공조 좌랑(부장)..등...
(이상의 모든 장수는 전라도 출신으로서 전원이....
전사하거나 진주 남강에 투신하여 자살하게 된다.)
전라도 군대와 민간인 2만7천여명이 머나먼길을 걸어서
진주성에 도착한후....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전략회의을 하게 되는데....
경상도군과 의병대장 곽재우등은 6만이넘는 대군인 일본군이 요구하는데로
성을 비우고 후퇴하자는 공성전(空城戰)을 주장하면서 전투를 반대하였고....
전라도출신 장군들은 성안의 식량도 충분하고 수비하기 좋은 진주성의 지형과
구조를 최대한 이용해서 목숨을 걸고 수성전(守城戰)을 하자면서 격렬하게 대립을 하게된다.
결국...의병장 곽재우등의 경상도 군대는 성밖으로 나가 후방에서 지원공격을
하겠다면서 진주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모두 도망을 가버린다.!
경상도 출신 장수들중에서...
서예원(徐禮元) 진주 목사(전투대장)
김준민(金俊民) 거제 현령(部長)
송제화(宋悌和) 감포 현령(전투대장)
정명세(鄭名世) 해미 현감(전투부대장)
성수경(成守璟) 진주 판관..등 극소수만 진주성에 남게 되는데...
이자들은 도망을 가려는 것을 전라도 출신 김해부사 이종인(李宗仁)이
위협해서 붙잡아둔 탓이다.
이후 전라도 군대는 경상도 군대가 후방에서 지원을 하여준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서...
10일동안에 걸처서... 주야로 처절하게 싸우면서 이제나 저제나 경상도 군대의
후방공격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는데도 성밖에서 지원을 약속한 경상도 군대와
의병장 곽재우등은 화살한방 쏘기는 커녕 그림자도 볼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진주성안의 전라도 군대는 ...
일본군측으로 부터 조선군의 지원은 불가능하니...항복을 하라는 요구를
여러번 받았으나...번번히 거절하면서 전투를 계속하다가...
끝까지 지원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상도 군대를 원망하면서...
전원이 통한의 절규속에서...장렬하게 전사하거나...
진주남강에 투신자살들을 하고 만다.!
성이 함락된후..최경회와 서예원의 시체는 일본군이 남강에서 찾아내서
목을 잘라낸 다음 소금에 절여서 서울 종로 저자거리에 긴창에 꽂아서 전시를 한후..
일본에있는 풍신수길에게 보내진다.!
일본군은 진주성에 입성한후 여자들만 빼고..움직이는 생명체들은
가축까지 포함해서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2차 진주성 전투"는 임진왜란 기간중 가장 치열하고 잔혹한 전투로 기록이 되고 있다.
그 전에.. 일본군이 진주성을 공격하기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령을 내리길....
경상도는 백색(항복-협력자)으로 표시하여서 한명도 죽이지 말라하였고..
전라도는 적색으로 표시하여서 남김없이 모두 죽여서 징표로 코을 베어오라고 하였다. (출처 :자유토론방)
어제 KBS징비록에 당시 사야가가 항복한 대상도 김수가 아닌 당시 경상도병마절도사이던 박진이었다. 임진년 당시 경상도의 대일본전투에서 결코 빼놓아서는 안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박진에 투항하고 민무휼에 조사를 받아 투항이 이루어 졌다 입니다. 드라마상 이런 인물의 오류는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당시 김수도 상당한 역할이 있었다고 봐야 겠죠
명량은 일부러 왜곡하여 특정인물을 위해 다른 지역 장수를 폄홰하고 당시 병사와 백성 모두를 조롱하는 원맨쇼로 나라를 구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서구 사상조류로 본다면 도무지 말이 안되는 것이죠
米紙ワシントン・ポストのインタビュー記事に関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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