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주머니가 두둑해야 좋은 세상이다.
정부는 왜 등가죽을 벗겨 먹으려고만 할까?
이빨이 아프면 돈을 주고 치료받게 해야 하고, 관절염 뼈다귀 아프면 돈을 주고 치료하게 해야 하는데, 정부가 대신 돈 내주겠다며(의료보험 국민연금) 자신들에게 돈 내라고만 한다. 그기까진 좋다 해도 청년들 수입도 없는데 쓸 곳만 만들어(수업료 올리고) 쥐어짜서 죽이려는 것인가?
뒷주머니 지갑에 오만 원권 10장 정도 넣고 쇼핑 다녀야 기분이 좋은 것이다. PP(신용)카드로 쇼핑 단지 돌아다니는 기분은
“에이 빨리 집에나 가자는 마음뿐이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려니
“아이쇼핑 맛이 이거구나!”
종로로 가서 삼계탕이나 쏴야 겠다. 함께 먹어 보자고....!!
이왕 돈 이야기 나왔으니 말인데,,
메르스 사태로 난리가 난 상태에서 법원이 삼성의 손을 들어 주어 삼성 후계자가 인수합병으로 세금 한 푼 안 내고 자산 500조 원의 삼성 그룹을 상속받게 됐다. 한국만의 획일적인 회사 소유 지배구조 정책, 공정거래법 엿장수 법조계가 하는 일 무전 유죄 무전유죄 장사 그 뒤엔 무서운 시민들의 패배가 있었다.
IMF 초래한 원인도 문민정부가 국내 기업 방어막이 없이 글로벌 국제 금융 앞에 자국 기업을 무장해제를 시킨 것 때문이었다. 기업이나 시민들의 이해를 고려하지 않은 관료의 선도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영국계 펀드 헤르메스(2004년 삼성물산에 투자한 영국 연기금 ‘헤르메스’)는 삼성물산 지분 5%를 취득한 후 경영진을 압박 지분을 전량 매각해 380억 원의 차익을 봤고, SK와 소버린(2003년 에스케이(SK)에 투자한 헤지펀드 ‘소버린’) 간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SK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1조 원가량을 지출했지만, 소버린은 1조 원가량의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칼 아이칸은 KT&G와 경영권 분쟁을 일으켜 1,500억 원의 시세차익을 획득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나마 SK는 국내 요지에 이통 대리점을 내주어 국내 요지 부동산 점포의 임대료 상승을 갑절로 올려준 공은 있다고 할 것이다. 즉, 이동통신사 대리점들이 요지의 임대료와 국부의 팽창에 기여한 바가 분명히 있었다. 전국 요지의 점포 임대료를 배정도 올려준 이동통신사들의 지난 십년간의 노력에 건물주들은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감옥에 있는 최00회장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라면 말이다.
10대 재벌이 곳간에 쌓아놓은 돈 522조 원 이것은 모두 국민에 돈이다. 1900만 노동자 중에 월 200만 원 이하 가 940만 명이라는 데 도대체 누가 개혁의 대상일까? 헤르메스, 소버린, 엘리엇이 노리는 쌓아둔 돈은 지켜진 것으로 보이는가?
시민에게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몫을 재벌들이 가로채어 쌓아 놓고 있으면서 끙끙대니 직장인들의 삶이 불안하다. 임금을 올려야 경제도 살아나지 않겠나! 시민 주도 주민 경제체제로 가야 한다.
외국계 엘리엇은 “삼성의 합병 비율은 삼성물산에게 불리하며, 삼성물산 이사들이 삼성그룹 오너 일가를 더 고려하고, 이사회가 제대로 불구이니,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산을 주주들에게 나눠달라”는 것으로 엘리엇은 투자 수익 대부분을 곧바로 펀드 투자자들에게 배당한다.
제일모직 주가의 가치가 높고, 삼성물산 주가의 가치가 낫다. 합병하기 전 삼성물산 주가의 가치를 높여야 소액주주들과 엘리엇의 주의 가치가 높아지고, 삼성전자 지배구조는 취약해서 적은 주로 서로 그물망처럼 그룹을 지배하고 있기에 대표가 보유한 주가를 끌어올려야 경영(지배)권 방어가 된다. 어쨌든 법원의 결정으로 경영권은 방어 했다. 장기적으로 삼성은 많은 법정(영국, 미국, 한국) 분쟁에 시달리게 되고 외국계 투자자로부터 받을 불이익은 과소평가 할 수 없다.
참고로 엘리엇의 창립자, 최고경영자는 미국인 폴 싱어(Paul Singer·71)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출신 1977년 자본금 130만 달러로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설립했다. 정치적 성향의 소유자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2001년 아르헨티나 디폴트(파산선언) 사태 때(2001년 1,000억 달러 규모의 아르헨티나 디폴트선언) 국제 채권단은 채무의 75%까지 탕감해주는 구조조정에 합의했다. 그러나 엘리엇은 이 합의에 응하지 않고 미국 법원에 소송을 해서 아르헨티나 국채 가격이 폭락한 틈을 타 액면가 4억 달러의 국채를 4,800만 달러에 사들인 뒤, 소송에서는 액면가와 이자를 포함한 13억3,000만 달러를 상환 요구해 승소했다.
결국 한국의 10대 재벌들이 보유한 부가 서방의 자본인 헤르메스, 소버린, 엘리엇의 먹이 감이 되어 줘도 문제 안줘도 문제인데, 이것을 시민에게 돌려주고 시민 주식회사 경제체제로 바꿔야 한다.
세계적인 격리 병동인 코소보 정신 병동은 세계의 7대 미스터리로 CNN이 지목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신 병동 격리지대는 정말 재미있는 곳이다.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고, 사회에서 볼 수 없는 행동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한 사회의 병리 현상의 집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특정 모순 기억의 병리 현상의 집대성이다.
유영혜 환자의 경우 좋다는 감정 표현을 때리는 것으로 한다. 그래서 반갑다고 간호사를 철썩 때린다. 그로 인해 죽도록 감금당하고 약물을 투여받고 모든 세상의 방법으로 고쳐졌을까? 전혀 아니다. 유아기에 인지된 기억은 그 자신이기에 죽어도 고쳐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죽음만이 그런 현상을 없앨 수 있다. 그러니 사회의 각종 흉악범죄나 훌륭함도 우리 사회가 만든 자업자득인 셈이다.
격리 중인 박영관을 법원이 소환해서 이송시켰더니 구속했다고 알려 왔다. 과연 구속하고 할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격리 자체가 형벌과 다름없는데, 법원은 법의 준엄함을 보이려고만 한다. 사회의 모든 것이 기억된 현상에 하나일 뿐이다. 그것은 새롭지도 창조적이지도 않은 기억에 일부이다.
격리가 필요할 수 있고, 법의 준엄함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모든 범죄와 병리의 그 이면에 그것들을 그런 현상의 사회가 있다는 책임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지 못한다면 법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폭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화가 책임을 공유한다면 그러한 범죄나 병리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인류의 미래는 평화로이 될 것이다.
메르스 미군 탄저균 괴담으로 고생하신분들께 면역력에 좋은 삼계탕 60마리 중복에 쏩니다. !
없었지만, 알코올 중독 정신과적인 격리가 있었습니다.
한영범 박영관 환자와 대면 진술,
한영범 환자 본인 진술은 거실에서 잠을 자다가 체포되어 밧줄에 묶여 격리병동에 수용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송으로 넘겨 온 가족 진술을 보니 부부싸움 중에 칼을 들고 행패를 부렸다고 기록되어있었다. 그러니 한쪽 주장만 봐서는 안 된다.
박영관 환자는 아주 격한 말로 듣는 사람도 없는데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아이들이 공부가 재미있어서 하든 죽지 못해서 하든 아이들이 아니면 아무 상관 말라는 말이다.” 김구운 국장, “그건 나라의 자원 개발부와 교육부의 소관이고 당신이 부모 아니잖아?” “한 마디로 집중해서 사교육을 하더라도 어른들이 경마와 경륜을 하듯이 해서 점수를 따라 이 말이다.”
“그렇지 못하려면 아예 교실에서 잠자는 60%의 학생들이 되라 이 말이다.”
“모두를 미치게 하고 돈만 뜯어내면 기업도 국가도 성장인가?”
박영관은 과자 몇 봉지를 슈퍼에서 계산하지 않고 절도한 죄로 구치소에 입소하였다고 주장한다. 신입 수용자들을 집합시키고 채혈을 하였고, 채혈 검사 판독 결과 박영관은 HIV 결핵 등 전염병 감염 사실이 밝혀졌다.
먼저 환자는 격리 병동으로 이송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게 되며 독방에 보내지며, 여러 병에 대한 치료가 행해진다.
물론 구치소와 같은 수번 대신 환자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분명 구치소에서 온 환자임을 알린다. 환자들 사이에서 ‘더러운 인간을 왜 여기까지 데려오느냐며 에이즈까지 걸린 놈’이라고 불릴 울 수 있다. 사실 모함이나 누명일 경우도 인간 이하의 평가를 법에 따라 받게 될 수 있는데 박영관은 절도 사실이 CCTV에 나와 있고 본인도 절도 사실을 시인했다.
격리병동의 환자는 교도소보다도 더한 강제 격리 상태에서 거의 움직이지 못하거나 반신불수의 상태로 순간순간 정신을 잃게 된다. 정신과에서는 정신을 차리게 하려는 여러 가지 약물을 투여한다. 때로는 한 달 이상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거의 혼수상태에 있기도 한다.
강제 격리 병동에서 더러운 인간, 살 가치도 없는 인간처럼 취급당하기도 하고 좌절과 실의 속에 생명을 겨우 유지하기에 죽고 싶어도 누구도 죽을 수 없다. 즉, 성장을 더하기 위해 국가 자산이라는 주장과 인간의 복지를 위해서라는 주장이 있고, 죽고 싶은 환자를 강제로 살려내는 곳이 격리 병동이다.
혼수상태에서도 그들이 하는 행동은 기억의 반복이다. 트라우마의 반복이다. 모든 정신적 질환자의 행위는 반복적인 형태를 띤다. 단순하게 아주 강력한 기억만을 재생하는 것이다.
세상의 구금과 구치소 교도소 이런 것이 과연 필요할까?
그것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 환자가 아닌가?
그래 본래 세상과 정신병원 강제 격리병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강제 격리의 트라우마는 모든 범죄에 행동의 상습성을 가진다. 상습성의 행동은 유아기의 트라우마가 기억의 저편에서 살아나오는 것이다.
모든 정신과 질환의 패턴은 트라우마의 반복 기억 재생이란 점이다. 강제 집행이니 공매니 마구 억눌러 세상 자체가 정신병원이 되어가고 있다.
열정페이나 저임은 관료 위주 국가의 권력이 만들어내는 자원배분의 왜곡으로 인한 시민 대중의 피해이다. 그들은 피해의 트라우마를 마음속과 기억에 가지고 있는 국가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피해자들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모습 그대로 이런 나라, 이런(잃은) 나라이다.
남북의 집권 지도부가 정말 국민을 위해 열정을 다했더라면, 정말 국민이 잘살게 하려는 사상과 이념을 따르고 있었더라면 총칼로 막아도 벌써 통일이 되었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힘을 믿고 사대적인 간신들이 차지한 강제지배의 상태에서 그나마 전쟁이 없었던 것만도 정말 다행인 것이다.
같은 말을 쓰는 집단에서 정말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 되었더라면 총칼을 뚫고 하나로 벌써 통일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잘난 체 하는 것도 못 난 것도 죽는다.
저자가 지난 1년간 서울과 경기도의 4개의 특수 격리(정신)병동을 관찰했을 때 직접 보고 느꼈던 격리상태의 환자들의 우울(조울)증 치매와 정신 장애 자살 충동 등을 정리하여 픽션으로 만든 작품이다. 책장을 펼치면 누구나 강제 격리를 당할 수 있음에도 그것에 무지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