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경쟁

自公有花 2015. 7. 29. 19:09

 선의의 경쟁

경쟁이란 때로는 무리를 동반한다. 선의의 경쟁이라고 해도 때로는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전에 하든 골프 대신 ‘꿩대신닭이란 말처럼’ 요즈음은 매일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하는 스포츠가 자전거 타기이고, 어제는 자전거를 타고 녹천역 부근을 지날 때의 이야기이다.

 

매일 수개월째 항상 뛰는 코스로 여기쯤 오면 70대 노인 둘이 나타난다. 아무 말이 없어도 무언의 동행이 되고 가끔 커피도 서로 교환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간단한 말동무도 해준다.

 

녹천역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코스로 다시 신설동까지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날따라 그 노인네들 자전거를 따라가고 싶은 여유가 있었나 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무런 이유도 없고 이익도 없는 그냥 추격전이 시작됐다. 선의의 경쟁인 셈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그 노인네들도 이유를 모르는 자전거 경주인 셈이었다. 

 

마구 페달을 밟아서 쫓아가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의정부 발곡역까지 경주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이유 없는 만용이 내 생각을 덮치고 주접을 떠는 것이었다.

항상 행인들은 지켜봐 주는 것처럼 보이고 남들이 보고들 ‘야 잘한다’고 하는 것 같으니 기분이 아주(찢어지도록) 좋아서 죽는 줄 모르고 달린 것이지, 특히 젊은 여인들이 부러운 듯이 봐주는 것으로 혼자 생각이었는지 착각인지 알 수 없었어.

 

그러다 발곡역을 지나서 처음 들어선 길이라 보도블록 같은 게 보였다. 순간적으로 ‘짬프 할까?’ 하는 생각과 보도블록 ‘무늬겠지’ 하는 자기합리화 판단의 찰나에 자전거는 이미 보도블록에 앞바퀴가 받히고 그 틈에 추락해서 꼬꾸라졌다.

 

이게 보도블록이란 것만을 사전에 알았더라도 충분히 1m는 건너뛸 수 있었는데~초행길에 아차 할 땐 이미 늦었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손으로 짚었다. 그런데 아픈 충격이 손목에 확 오길래 팔을 구부려 짚고 어깨를 충격에 밀어 넣었고 낙법으로 뒹굴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만일 나처럼 운동신경이 발달한 경우가 아니면 대갈빡이 깨졌으면 죽었을 것이다.

 

 

겨우겨우 아픈 몸을 일으키고 걷지도 못할 정도에서 꺾인 자전거는 전주에 매어두고 한마디로 영락없는 완전 반신불수의 장애인 모습으로 부르진 것 같은 뼈를 움켜 싸고 겨우겨우 집으로 와야 했다.

 

 

환호하든 행인들도 길을 가든 사람들도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경주하든 노인네들도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는 냉정하고 캄캄한 저녁녘에 부서진 상체를 부여잡고 끙끙대면서 오른쪽 몸뚱이를 껴안고 걸어서 집으로 와야 하는 내 모습이 정말 처량도 하더군!

 

 

 

겨우 발곡역에서 신설동까지 걸어오는데, 찬밥 더운밥 가릴 생각이 나질 않았고 꼭 마취 한 것처럼 오른쪽 상체에 감각이 없었으며 그래도 다리는 자꾸 어디론가 걷더라고 다리따라 집으로 온 것이다. 

 

 

왜 ‘택시를 안 탔느냐?’고 몸의 상체가 모두 부서진 것처럼 아프니 택시도 탈 수 없었다.

 

 

그래서 경쟁은 선의 경쟁마저도 무리를 동반한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함께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