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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정신과 건국일에 대하여,

自公有花 2016. 5. 2. 17:25

대한민국 건국정신, 건국일에 대하여,

 

대한민국관보1호 에는 1948815일은 재건일 임을 명확하게 공표하고 있고, 대한민국의 국호를 최초로 사용한 건국일은1919413일 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1945년 샌프란시스코연합국회에서 국제연합을 탄생시킬 때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표의 참석을 묵살하려했는데 비해 중국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인정하고 지원하였다.

 

중국이나 미국의 또는 다른 외국의 지지를 받는다고 합법정부라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자기 영토와 주민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지, 어느 외국의 지지로 국가가 수립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한반도 모든 주민이 일제에 항거하고 대한민국을 불가피하게 외국에 세웠다고 해서 임시정부가 가상의 정부가 될 수 없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하나의 엄연한 건국으로서 외국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한반도 주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세워진 자주 독립 국가인 것이다.

 

 

제헌헌법의 전문(헌법정신)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민국은 기미 3.1 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중략) 분명히 815일은 건국절이 아니라 광복절이다.

 

제헌의회는 8·15광복 후 미군정하에서 국제연합(UN)의 감시 아래 1948510일 총선거를 실시하여 구성된 국회를 말하고 대한민국을 재건한 날이라는데 당시 의원들과 초대 대통령이 제헌국회에서 의장 이승만(李承晩)은 개원식사(開院式辭)에서 오늘 여기에서 열리는 국회는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이다.”라고 확인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 8. 15.)유엔을 창설한 미국은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로 유엔 승인 인정했다.  유엔과 미국의 유일 합법정부로 남한 단독정부만을 인정하였으나, 북한에서도 조선 정권이 정식으로 정권 수립을 발표했고(1948. 9. 9.) 중국과 소련이 조선 정부를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게 됨으로써 한반도에는 동서 냉전의 두개의 정부가 대치하게 되었다.

 

일본의 패망과 함께 대한민국을 수립하려든 한국 민의 뜻과는 다르게 동서 냉전의 시작과 함께 연합국이 한반도에  두개의 정부를 세워 대치하며, 서로 상대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국제적인 승인을 주장하고 대치하였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했었다.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망명정부가 한반도와 부속 도서를 영토로 연합군의 승리로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어 "미군정, 대한민국 정부 수립" 그리고 "소련군 진주와 조선정부 수립,"이라는 비극적 상황이 전개되어 한반도는 분단 상태로 각각의 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명목상의 정부가 아니라 실지 회복을 위한 헌법과 정부기구와 조직과 체제를 갖추고 군사 조직인 광복군 투쟁과 독립군단체 지원 같은 정치와 군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연합군이 먼저 일본을 굴복시킴으로서 우리의 힘으로 실지를 회복하고 광복을 맞고자한 운동들이 좌절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연합군의 지배하에 개인 자격으로 환국하게 되었으며, 당시 주둔하든 외국군대의 앞잡이 노릇을 자처하든 일제 식민지배 세력들에 의해 건국정신은 펼쳐지지 못하고 일시수난을 받았다.

 

 

카이로선언

각 군사 사절단은 일본에 대한 장래의 군사행동을 협정하였다. 3대 동맹국은 일본의 침략을 정지시키며 이를 벌하기 위하여 이번 전쟁을 속행하고 있는 것으로, 위 동맹국은 자국을 위하여 어떠한 이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또 영토를 확장할 의도도 없다.

 

위 동맹국의 목적은 일본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개시 이후에 탈취 또는 점령한 태평양의 도서 일체를 박탈할 것과 만주, 대만 및 팽호도와 같이 일본이 청국으로부터 빼앗은 지역 일체를 중화민국에 반환함에 있다. 또한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될 것이다. 앞의 3대국은 한국 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자주 독립시킬 결의를 한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3대 동맹국은 일본과 교전 중인 여러 국가와 협조하여 일본의 무조건항복을 촉진하는데 필요한 중대하고도 장기적인 행동을 속행한다.(출처는 위키백과)

 

 

한국의 독립의 전제가 되는 카이로 회담이 한국 민이 일제에 저항하는 3.1운동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이 정식으로 승인되자, 1944년 프랑스, 폴란드, 소련정부는 주중대사관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을 통고하였고, 1945년 포츠담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은 다시 확인되었다.

19193·1운동과 그 결과로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의해 자유 민주 독립공화국을 천명한 것은 대한민국으로의 길을 확실히 제시한 것으로 많은 수난을 격고 전쟁을 거치면서도 한결같이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한반도에서 자유 민주 독립이 보장되는 통일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건국 정신이 이미 천명한 것을 존중하고 실천해 나가서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에 나아갈 바를 제시한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정신, 
한반도에서 자유 민주 독립(자주)이 보장되는 통일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은 건국이 이미 천명한 건국 정신을 존중하고 실천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배영규 초일류국가를 향하여~~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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