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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 달 5월, 역사와 전쟁이야기에서 교훈을~^^

自公有花 2018. 5. 6. 19:31

가정에 달 5월, 역사와 전쟁이야기에서 교훈을~^^

폭력과 전쟁은 나쁘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나쁜 전쟁만 있는게 아니죠, 요즘 전쟁은 나쁜 것이니까, 평화를 추구한다면서 역사에 교훈을 망각하고 있어요♡ 모처럼 가정에달 가족이 토론해보자구요^^

 

김대중 선생님의 햇볓정책이 북한을 무장해제시킬 것이다란 믿음이 있었구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승계해서 남북관계를 발전을 추구했었지요!

그때 저는 북한이 진정하게 평화정책을 추구하도록 약속을 받아야 하고 핵개발을 포기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대담한 압박이 필요했고 그순간에는 그게 가능했었구요, 그랫되었으면 남북이 화해하고 하나되어 더욱 빨리 중국으로 진출할 수 있었기에 북한에게도 그게 이익이 됐을 겁니다.

그래서 술수와 전술적으로 남북이 회담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은 길게 멀리보아 우리민족을 죽이려는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서 매우 기쁘했죠, 대담한 대북정책으로 민족에 운명을 풀어 나가려니 했는데요, 미국에만 의존해서 북한이 핵무기를 비밀리에 만들고 있는 것도 모르고 화해니 평화니 중도니 하면서 시간을 보내서 속이 터졌는데요 북한은 기어코 핵실험에 성공하고선 공갈을 해왔었지요. (핵실험을 하기전까지 98%를 성공했다고 해도 성공한 것이 아니기에 압박과 회유를 시도 했더라면 포기할 수 있는 것이고, 핵을 보유한 나라도 압박에 핵을 포기하는 상황인만큼 위험에 강도에 따라 진지한 협상은 결과를 도출할 수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되어선 북한이 핵보유를 노리는 핵실험과 미사일까지 갖추는데도 미국만 믿고 있다가 미국이 북핵 제제에 들어가자, 그제서야 미군이 가져오는 사드를 자신이 가져 온 것처럼 호가호위를 해대서 중국에 보복을 초래하고 남북관계 단절이라는 악수를 선택했었죠? 압박은 필요했지만 방법은 그게 아니었다 그말입니다. 잡초베는데 도끼를 휘두런 것과 같았지요,헬~

 

이스라엘 모사드처럼 북한정보를 알려고 했더라면 북한이 핵개발에 성공하는 순간까지 몰랐겠어요. 스스로 자위권차원에서 무슨 수단을 강구하고 북한을 대화테이블에 끌어내어 해결을 하려고 했어야 동맹국도 이해를 하지 않겠어요

 

그냥 손놓고 대응하지 않고 인사를 핑계로 도둑질에 탐닉한\\자들이 아니고 뭡니까? 핵개발 책임지는 눔이 없어요

 

이미 핵을 만들어 한방으로 수백만을 살상할 능력을 보유한 김정은이 120만이라는 병력과 재랙식 무기까지 손에 넣었는데요

뒷북도 유분수지 대결을 하잡니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구나 생각되데요

 

 

문재인 대통령이 전쟁은 나쁜 것이니까, 평화를 하자고 남북관계를 풀려고 얼마나 고생했죠. 잘 한 것입니다. 근데 사실 핵을 손에 넣고 대규모병력까지 거머쥔 김정은이 바보도 아니고 쉽게 회답장에 나올 입장이 아니죠, 당신이 김정은이라고 해도 이미 핵을 가지고 미사일도 가지고 재랙식 무기와 병력도 우세한 규모라면 항복을 요구할 입장이지 평화를 추구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럼 어쩌지요? "수백만이 죽는 핵을 쏴바라, 그라면 우리 군대가 너히들 박살낼 거다" 그럴순 없잖아요 누군가 자존심을 버리고 진지하게 평화를 추구해야지 않겠어요

이명박 박근혜때 좀 강력히 대처를 하고 해결했어야 했는데요 이미 시간을 놓쳤어요 북한의 살라미전술에 당했다는걸 이제야 알았으니 어쩌겠니? 한심하죠?

고위관료와 재판하는 법관 심지어 정치지도자들까지 돈에 환장해서 있는데 핵이 눈에 보일리가 있겠어요. 내가 핵만든다고 하니 믿지를 않았어요

 

우리가 양보를 하고 약간의 주권을 내주더라도 수백만이 죽고 다치는 것보다는 낳습니다. 전쟁보다는 평화가 낳다는게 교과서에 있습니다. 정답은 평화이지요. 우리모두 살기위해서 평화를 선택해야 겠지만 우리의 장수들과 60만 군대를 욕해선 안됩니다.

 

 

김정은이 미국의 강력한 응징방침에 일단 위기를 모면하고자 했을 것이고 문재인 대통령의 눈물겨운 노력에 감동을 받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래되면 김정은을 욕해서는 안되죠 시황제께서 한국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백두승리에 축배에서 형님 한 수달라고 했다면, 나같으면 "도람푸하고 폼푸는 또라이들 아니냐, 갸들은 기껏해야 4년이고 너는 평생해먹는데, 그리 눈치가 없니,"그랬겠죠,  그리곤 문대통령의 책사 달밤 선생께서 혼자 스스로 한 약속  미군 사드배치 못 막기만 해봐! 그래서 푸대접 소문난거죠,  에이씨 반도체 공정 내놔봐라고 윽박지르는 듯한 반도체굴기를 보면서, 달밤 선생이 한심한 생각이 들죠?

 

북이든 다른 나라든 똥물에 튀겨죽일 놈 두개골파열시켜 개박살 한다는 생각을 고쳐먹은 것이라면 욕할건 없다고봐요

 

모택동은 항복하는 중화민국 장수 지도자들의 항복을 거부하였기에 중화민국 간부들이 장수들을 죽이고 투항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북한이 만든 핵은 용서할수 없지만 김정은의 아량은 모택동보다는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왕 조용팔이 허리를 빡차게 굽혀 인사를 올렸다는데요 사람 알아본 것이지요. 우리의 가수나 배우들이 목숨을 보장하는 인품 앞에 저절로 굽힌 것 같은데 욕해선 안되겠죠?

 

 

어쩌튼 민족말살할 대규모 살상무기를 내려놓고 틕터놓고 대화해야 겠죠, 역사에 후진국 신라가 번영하고 찬란한 선진문물의 백제를 접수해서 크게 도약한 전례가 있습니다. 남북의 번영을 도모해보는 것을 허락한 김정은을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죠?

 

 

조선시대 명나라만 믿고 국방을 소홀히 하여 임진왜란을 촉발한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조총이란 신무기가 뭔지도 모르고 신립같은 명장과 조선에 아들들 군대를 사지에 몰아넣어 전멸시키죠

 

원균에 2만 병력으로 부산일대 15만 병력이 진치고 있는 그 가운데로 들어가서 적을 치라는 또라이들이 지도층이었는데요

나폴러옹이나 징기스칸도 이런 상황에선 전쟁 안됩니다. 또라이들이 명나라 하나만믿고 그런 것이죠?

 

자기나라 백성들의 아들들은 총알받이로만 알고 명나라만 처다보고 하는 짓들인데 이들은 침략군 일본군은 욕하지 않고 자기나라 장수와 흙수저인 군인들만 허망히 뒤졌다나 비겁했다며 욕하고 또 욕하고 이젠 영화까지 만들어 쇠놰해대고 있어요

 

이순신 장군이 배설이 구해낸 12척의 장작귀선(판옥선)으르ㅡ

조선을 구하게 되어 다행히 방어에는 성공했죠 이순신장군이 12척에 배가 없었다면 나폴레옹처럼 백마타고 일본군을 무찌러겠어요, 아님 홍길동이나 정도령처럼 축지법으로 싸우겠어요 손오공처럼 변장술을 씃게서요.

 

 

어째튼 미래를 내다본 배설장군 땜시 배12척을 물려받아서 승리했잔아요? 그리고 졸지에 역적에서 성웅이 되신건데요 명량 울돌목 해전은 바로 배중손이 몽고군을 수장시키려 했던 곳이고 이런 것은 조선왕조실록에 없는 것인데 아이디어를 구할수 없죠, 배설이 12척을 간신히 이끌고 후퇴하는데 전라우수사 김억추도 한몫했어요, 후퇴 선단에 합류해서 적군과 전투를 하면서 4척을 인솔한 것으로 김억추장군의 부분에 나와 있잖아요, 김억추장군과 배설이 짱뜨면 누가 이길지는 모르지만 김억추장군은 시종일관 배설이 영웅이라고 본 모양입니다.

 

 

 

열심히 농사짓고 과거시험보고 노비를 부리며 잘 살고 있는 조선이란 나라를 뺏겠다고 쳐들어 온 놈들을 혼내주려는 의병항전과 같은 진주성 혈투를 나쁫다고 말 할 수 없어요

 

배달 민족이 중원과 한반도에 걸쳐 살아 온 5천년 동안에 주변국 나라들한테서 침략만 931번이나 당했어요

931번의 외침 기간 동안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죽거나 죽지 않고 용케 살아도 다쳐서 병신이 되기 일수 였고 건장한 청년은 노예로 끌려가서 일생을 마쳐야 했었던적이 931번 이란 말입니다.

 

지금 청년실업 취직이 안되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살든 때는 취직 정도가 아니고 노예로 끌려갔었다니 열통터지고 화병나죠?

 

그렇게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괴롭힌 나라들 중에서도 대륙의 침략자들 그중에서 몽골이 자신들이 배달민족이라며 우리민족을  서자나 부마국이라며,  한반도로 우리를 밀어 넣어 버렸어요

 

고려말기에 배중손 적관지대장군(참모총장)은 일본 열도의 80개 나라에 전통을 띠우고 사신을 보내서 고구려의 후손인 일본과 고려가 연합해서 징기스칸의 몽고 군대를 진도의 울돌목에서 수장시키고 중원대륙을 되찾자고 남고려를 세워 진도에서 왜구들을 지휘하고 고려 몽고연합군 6.000명을 해전에서 격파하여 몽고를 놀라게 했었죠? 바로 그곳에서 200년 후에 이순신장군이 명량 대첩을 성공시킨 겁니다. 역사는 돌고 돈다더니 맞는 말슴입디다.

 

당시 왜구들은 배중손을 흠모하고 고마워했었지만 일본열도에 수많은 나라들로 분열되어 몽고의 일본열도 점령 전쟁에 허둥지둥 남고려의 저항에 의존해서 겨우겨우 살아남아서 통일을 시도하게 되었죠

 

그런 왜구들이 대륙의 강력한 몽고의 출현에 전전긍긍하여 통일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힘이 크지자 고려 조선으로 침입했었어요

그리고는 조선이란 나라가 임진왜란 이라는 조선정벌론이 발발하죠

평온히 살아가는 조선이란 나라에 침략전쟁을 읽으킨 겁니다.

 

한민족을 쪼그라터린 것은 대륙의 몽골군이었고 찌그라져서 평화롭게 살겠다는 우리 아버지 할머니들을 죽이고 잡아가서 노예로 쌈겠다는 전쟁이 바로 임진왜란이지요

 

임진왜란에 남여노소 없이 모두 나서서 맞서 싸웠지요.

그래요 맞았어요 바로 일본이라는 나라의 30만이 넘는 침략군과 십만이 채 안되는 조선의 모든 병력을 이끌고 신립장군이 기마전술로 탄금대에서 맞서 장렬히 모두 전사를 하였지요

 

일본 왜구들의 두목 격인 풍신수길 토요토미는 신무기인 조총과 대병력으로 조선을 점령하면 얼씨구나 항복하고 환영할줄 알고 선조가 있는 한양으로 미친듯이 마구 쳐올라왔기때문에 신립장군은 기병으로 선두 침략군을 일거에 쓸어버려야 전세를 바꿀수 있다고 생각하고 정면승부를 걸었지만

왜군들은 부대단위의 대문짝 같은 바리게이트를 치고 기병돌파를 저지하고 조총편대 집중사격으로 조선의 기병들을 전멸시키고 말았는데 그 전멸된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들이었어요

 

정규군대 모든 병력이 전세를 꺽기는 크녕 적에게 전멸되었으니 왕은 급히 도망해야 했고 그때까지 누리던 신분제의 혜택인 지배계급인 양반들은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포로로 잡혀 일본인의 노예가 되었었죠

 

침략군들은 글께나 아는 양번들은 노예로 부력먹으려고 잡아갔었지만 일반백성들은 주인없는 신세가 되어 산지사방 흩어져 굶주려 죽게 되었어요

 

전란으로 일자리나 생업이 없어지고 일본놈들은 무지랭이 백성들은 쓰먹을데가 없으니 노예로도 가치가 없다고 본 것이지요, 요즘 근로자도 자격증따고 스팩 쌓아야 팔리듯이 왜놈들도 간사해서 무식한 노예는 운반비가 안 나온다고 봤던 모양입니다. 아니 도자기굽는 도공들은 모셔갔다고도 합디다. 그래서 백성들이 모두 나라를 위해 의병이 되자고 분연히 읽어 났어요

 

의병들은 지위나 재산을 모을려고 하는 양반들과는 달리 침략자들을 쫒아 내려면 무장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무기대신 농기구를 가지고 소규모 왜군들을 기습해서 공격하고 무기를 빼앗아서 무장을 해 나가기 시작했고 후에는 2만 명에 이르는 규모가 되어 전국에서 저항했죠

 

조선의 지도자 선조대왕과 양반들 그리고 정규군이 패배하자 백성들이 들고 읽어나 전국 곳곳에서 시도때도 없는 게릴라전투가 산개되어 일본군은 충격에 빠지죠. 특히 배설군대는 길다란 죽창으로 무장한 기병대였으므로 일본군에 바싹 접근하지만 조총사거리밖에서 방패로 조총을 무력화시킨 유일한 비겁한 군대였어요, 아군 조선천지(입장)에서 보면 우섭고 비겁해 보이는 무식한 (공격무기가 아닌 방패를 보유 )비겁한 군대였던겁니다. 하지만 일본군은 주력부대가 모두 보병이었는데요,


배설의 기병대가 길다란 죽창을 말 위에서 내려꽃는 그 전술에 아작 그자체인데 설사 죽지 않고 부상 당했다 해도 칼로베인것하고는 달라서 살아 날 수 없었든 것입니다. 오죽하면 풍신수길이 성주는 돌아가라고 정유재란에 명령했겠어요, 일본군대 병사 자체가 "배설(배세루)이 나타났다고 하면 장수들 명령이 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군 졸병들도 개죽음보다 못한 처참한 죽음은 싫었던 모양인데 일본군의 깔금한 장교들이야 칼이나 총에 죽는 전사는 명예롭다고 착가해서 참았겠지만, 이건 뭐 거지 같은 것들에게 조선가지 와서 죽창에 찟어져 죽다입니다. 그려,

 

괄목할 의병전은 부산에서 한양으로가는 경상도 보급로를 끈질기게 치열한 전투로 차단한 성주성 전투가 대표적인데요 만주까지 기세 좋게 올라간 일본군 1진 가토기요마사의 족보의 기록처럼 조선에 호랑이 때문에 눈물을 흘린 기록(스스로 공을 허무는 후퇴) 도망을 하고 싶었겠습니까?

 

성주에서 배설은 부상현전투에서  토요토미로부터 조선왕으로 책봉된 하시바 히데카츠(오다노부나가의 딸 고우공주의 남편) 갈비뼈 하나를 빼앗고 구로다 요시타가의 완쪽 무릅뼈 도가니 하나를 빼앗고 구로다 분신의 머리 하나와 구로다 요시타카의 칼

한점을 빼앗고 하시바히데카츠의 조선왕에 책봉한다는 황금에 새겨진 표주박 문양의  어표(6.25때 종문에서 분실함)를 빼앗자 일본군은 결국 전투를 포기하고 일본으로 철군하게 된 것입니다.(빼앗은 어표를 선조에게 받쳤더라면 그 당시 바로 참형되었을 조선에 문화임을 배설은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성주 전투가 얼마나 비참했는지는 성주목사 이덕일의 장계에 피가튀고 살이 짲기는 조선 의병들의 엄청난 희생과정은 눈뜨고 차마 볼수 없는 광경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임진왜란의 지도부 하시바 히데카츠의 호위무사 24기사가 모두죽어 나갔다는 것은 24기사 하나하나가 가토 기요마사 이상의 일본 최고의 칼잽이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고 그 지휘부의 병력 약200여명이 죽었다기에 토요토미가 배설하고는 전투를 하지마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정유재란때 왜군이 호남으로 먼길을 우회할 정도였답니다.

선조는 무명의 배설에게 합천군수를 제수하며 합천을 수복하길 격려하고 뒤이어 동래 진주성 부산을 수복하게 했었답니다.

 

 

성주성전투에서 배설의 유격술에 도가니 한점을 잃은 구로다 요시타카는 약 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잽사게 서울쪽으로 툅니다. 배설을 유인하기위해서죠 끝내 만주(건주여진 서수라)를 점령하고 있는 가토에게 달려가서 배설놈하고는 맞서지 마라고 충고하고 하시바히데카츠가 사망할 것을 알려주면서 철군을 명령하게 됩니다.

 

역사에 진실을 조선군기록은 하나도 진실된게 없어요 사실대로 쓰기엔 부끄럽잖아요 배설이 사대부 자식이거나 정규군 사령관이었음 비난받지 않았을거예요.하지만 배설이 정규군에서 패잔병이 되었다고 의병으로 세운 공로라서 거지 발사게취급을 받지 않은 것만해도 대단하죠. 침략한 일본군은 두둔하고 적군을 죽인 것을 비겁하다고 하는 것이 당연히 조선 사람들 특성이죠.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은 좀 다릅니다.

 

일본군은 족보에 전쟁시간과 장소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고 약간 전황을 부풀린 것은 분명하지요 반면 우리나라는 사서를 인정하지 않고 공문서만 인정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전쟁사의 시간과 장소 군대의 규모가 제대로 보고되어 있지 않죠 국가 공문서라는게 보고하는 관리가 쓰기 나름이고 진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배설은 합천을 수복하여 군수로 부임하기위해 적들을 추격하게 되고 조선의 의병들 수만명이 최초로 승전보를 거머지고 농기구와 죽창 그리고 꽹과리를 울리며 너도 나도 일본군 최고 대장 하시바 히데키츠의 철수를 추격했던 것이죠

점차 소문이 나자 의병에수는 불어났고 하시바히데카츠의 병세는 악화되어 진주성에서 일본군은 마지막 결전을 감행하조ㅡ

 

김시민장군을 비롯 6만 명의 의병들이 진주성에서 혈투를 벌였으나 철군하는 왜군들이지만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어요

결국 우리 아버지들 의병들은 모두 전멸해갔었죠

진주성 외곽까지 추격한 배설의 의병부대의 외곽전투의 거듭된 소규모 승리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진주성을 전멸시키려고 하였죠 끝내 김시민장군도 전사하고 유명한 의병장 대부분이 진주성에서 전사합니다.

 

 

하지만 진주성을 적에게 넘겨줄수 없다고 생각한 배설은 김시민을 구하기위해 진주성외곽전투를 포기하고 진주성을 장악한 일본군을 몰아냅니다. 그리고 김시민장군을 구출하지 못하고 외곽전투를 하다가 수많은 의병들이 몰살당해서 애통해하며 일본군 추격을 중지하고 진주성재건을 서두러죠

진주성이 전멸당하고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어면 일본군을 철군하지 않을수도 있었어요

 

배설이 진주성을 일본군에게 회수하자 선조는 배설에게 진주목사로 김시민후임으로 임명합니다. 그날밤 하시바 히데카츠는 일본으로 가기위해 칠천도에서 배를 기다리다가 운명했다죠 그래서 임진왜란은 끝나게되었죠

배설이 칠천도로 하시바히데카츠를 추격했다면 경계심으로 죽지 않았을수도 있었을겁니다.

 

 

임진왜란의 총책임자 하시바히데카츠가 배설이 뺏어간 갈비뼈 하나를 "내 갈비뼈 찾아주오, の肋骨見つけてくれ, の肋骨見つけてくれ " 원망하면서 칠천도에서 비오는 그날 밤 전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임종 유언대로 일본군은 눈물을 흘리며 철군하기 시작하게됩니다.


일본 역사에는 하시바 히데카츠가 조선 성주에서 이름모를 전염병에 걸려 칠천도에서 10월 5일 이른 밤에 병사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배설이 빼앗은 어표는 전염병으로 분실한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배설이 역모한다면 막을 수 없다는 죄명 하나로 탈영병으로 누명을 쒸워 참수한 후 6년이 안되어 선조는 재심을 통해 복권 시키고 선무원종 1등공신으로 추증하고 임진왜란에 참여한 모든 장수에게 내린 상보다 더 큰 6600만평방미터의 땅을 그의 묘지로 하사합니다. 뒤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병조판서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봉급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광해가 누구입니까? 바로 선조 대신 전쟁을 실지 지휘한 인물이 아닙니까?  (명량 왜곡과 진실)


이이 율곡 선생이 성주 상당서원에 강사로 있을때 그 서원에서 책보따리를 들고 유년기를 보낸 배설에 운명이 바뀐건 전란 위험을 우려한 도병마사 장필무장군의 충고로 무관이 되어 임진왜란이 끝나자 그는 명성 하나때문에 죽게 된 것이 역사에 진실입니다.  퇴계 이황선생님 그리고 성웅 이순신 장군 존경받는 모든 공신들이 하사 받은 땅보다 수 천배의 규모의 땅을 하사 받았다는 사실이 진실을 증거하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