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전투 때 남원의 김여립이란 한 백성이 피난민을 따라 왜적을 피 해 경상도로 달아나던 중이었다. 하루는 느닷없이 뒤쪽에서 돌진해 오는 일본군 시마즈 요시히로의 7천 명 군대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뒤에는 일 본군 약 7천여 명이 넘는 조총 교대 연발 병사들이 산과 들을 가득 메우 며 엄습해 온 것이다. 앞에는 명나라군 졸 20만이 칼을 들고 있었고, 그 사이에는 선조 대왕이 수첩에 메모하여 창설한 조선의 삼지창 2m 부대 로 피할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는 상태였다. 앞에는 명나라 동일원 장군 의 20만의 병력이 취권을 추면서 칼춤을 추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럽고 경황이 없어 가슴이 ‘쿵당 쿵당’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런데 한쪽 길가 소나무 아래를 내려다보니 한 선비가 말에서 내려 쉬고 있었다. 하인 두 명이 채찍을 쥐고 그 앞에 서 있었고, 몇 폭이 되 는 하얀 보로 길가 양쪽에 장막을 쳐 놓았는데 마치 길의 먼지를 막는 모양새였다. 남원의 백성 김여립은 선비가 앉아 있는 나무로 달려가서 사 람들이 죽게 되었으니 어떻게 하면 살 수 있겠느냐며 다급하게 호소하였 다. 그러자 선비는 빙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너는 왜 이리 호들갑을 떨며 다급해 하느냐? 우선 내 곁에 앉아서 지 켜만 보면 될 것이니라.” 이 백성 김여립이 선비를 보니 아주 편안해 하며 두려운 기색이라곤 전 혀 없어 보였고, 한 손엔 대장군 칼과 같은 칼도 차고 있었다. 김여립 백 성이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달리 살 방도도 없었기에 안절부절 못하면서 그 큰 칼을 찬 선비 곁에 앉아서 지켜보기로 하였다. 일본군은 긴 창으 로 명나라군 조선군을 닥치는 대로 휘둘러 목이 수박처럼 뚝뚝 떨어지 고, 용감한 조선의 2m 삼지창 부대도 힘겹게 가까이 가려고 했으나 일본 군은 허용하지 않고 죽이기도 하고 사람들 목에 밧줄을 매고 포로로 끌 어가기도 하며, 닭과 개도 닥치는 대로 죽여 없애서 이 화를 모면하는 자 는 아무도 없었다. 보아하니 옆집에 살던 ‘이몽’이라는 아무개가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 보였다. 너무도 끔찍하여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왜놈들은 큰 칼을 차고 있는 선비가 앉아 있는 곳만은 보지 못 한 듯 모든 부대가 다 통과하면서도 그냥 지나칠 뿐이었다. 저녁이 되어 서야 명나라군의 시체는 산을 이루고 그 속에 조선군들의 시체도 산을 이루고 있었다. 일본군은 전쟁에 승리하여 유유히 성안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큰 칼을 찬 선비와 이 백성은 온종일 왜군의 발굽 아래에 앉아 있으면서도 아무 일도 없었다. 김여립 백성은 그제야 선비가 특별한 재 주를 가진 줄 알아차렸다. 절을 올리고 존명과 사는 곳을 여쭈었다. 그러 나 선비는 끝내 말하려 하지 않고 말을 타고 바람처럼 내달려 가버렸다. 준마의 속도가 너무 빨라 도저히 뒤쫓을 수도 없었다. 이 김여립이란 백성은 훗날 우연히 그때 당시 포로로 붙잡혀 갔다가 도망하여 돌아온 이몽 아무개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의 말이 “시마즈 장군의 왜구 군대에 붙잡혀 끌려가다가 요행이 성벽 아래 소나무가 있든 해자(연못)에 뛰어들어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곳은 바로 그 백성과 선비가 앉아 있었던 곳이 아닌가? 이 김여립이란 백성은 그에게 그곳만 적에게 화를 당하지 않은 까닭을 자세히 물었다. 그랬더니, “왜군에 끌려가다가 그곳에 이르렀을 때, 올려다 보이는 것은 높이 솟은 성채와 험준한 천혜의 해자가 있었지요. 그 요새는 너무도 가 파른 절벽 같아서 도저히 인력으로 닿을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적군은 다만 그 아래를 지나갔을 뿐이었지요. 저도 그 해자에 죽고자 뛰 어들었는데, 요행히 살아났습니다. 그 선비가 바로 진도에서 대장군을 내 려놓은 배설 장군이라는군요.” 이에 김여립과 이몽은 동쪽을 향해 큰절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남 해안에 살면서 그 후손들이 대대로 이날을 기려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 구국의 서남해안 청야 작전을 펼친 배설 장군이었다. 정유재란 8개월간 조선 백성을 일본군의 말발굽에서 지켜낸, 수많은 백성을 살린 장수였 다. 불통의 수첩 대왕이 아니었다면 일본군은 부산에서 모두 괴멸하여 항복하였을 것이었음에도 일본군 입안에 자국 수군을 몰아넣어 괴멸시724 명량, 왜곡과 진실 7. 부산항 725 킨, 일본의 첩자들과 궁중에서 소금값을 폭등시켜 놀고 있는 선조 대왕 이 백성 삼분의 일을 죽이고 말았다. 전쟁의 총탄은 한순간 스치지만, 그 상처에 장애를 입은 백성은 고통 속에 죽어 가야 했다. ‘똥차가 길을 막으면, 에쿠스도 갈 수 없듯이’ 눈물 로 울부짖으며 동양에 로마를 건설하려던 도요토미의 야욕을 속임수로 막아낸 심유경과 난신이 궁궐에서 새로운 최신 패션 의상을 갈아입고 승 전 파티를 하고 있었다. 풍악이 크게 울리자 왕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이 내 백성은 속으로 울어야 했다. 최종편집 2007년 3월 25일 (일) 14:15 우리 진정 애국의 정신으로 뭉칩시다 시기와 이기심으로 자신만을 돌보지 말고 통합의 큰 힘을 모읍시다다다
히힘을 보여줍시다.
|
최종편집 2007년 3월 25일 (일) 1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