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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악회 창립으로 이어진 걷기운동

自公有花 2007. 7. 9. 21:47
청계산악회창립소식 | 뉴스보기 2007.04.30 00:42
퍼스나콘 주석(boq545) http://cafe.naver.com/boq5/12 이 게시물의 주소를 복사합니다
출처 카페 > 덤핑뉴스(부동산자유공유화추진협) / 주석
원문 http://cafe.naver.com/boq545/77
편지 공지사항

2006/11/25 23:42

http://blog.naver.com/boq545/90011223887

출처 카페 > 부동산 자유 공유화 추진 협.. / 주석
원본 http://cafe.naver.com/boq545/12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쳐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였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 해?"
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됐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 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 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는
우리들 신,구 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 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뉴라이트 중구연합이 함께합니다....이제 산으로가봅시다..

2007년1월17일 오후3시경 강남고속터미널 웨딩홀 5층에서 약3만회원의 청계산악회의 전국 지도부 지회  대표자 약300명이  모여 창립대회를 성대히 치르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 갓다.

이날 암암리에 많은 인사들이 수면하에서 준비해오든 청계산악회가 정식 발족하고 6월 까지20만으로 세력을 확장하기로 결의 하다

대표는 참석지역 대표자 들에게 당부의 말슴을 통해 가능하다면 헌신적인 노력으로 100만회원으로 주위 친척 친구 가족 마구마구 세력 확장하여 등산을 하자고 제의하엿다.

 

축사는 중구 뉴라이트 상임대표이신 이학봉 대표.. "생각보다 빠른세력확장을 거듭하는 청계산악회의 무궁한 헌신적 노력에 축하"를 하엿다.  그간 헌신적으로 조직을 꾸려온 이용호 목민포럼 사무국장이청계산악회 회장을 맡기로 하엿습니다

 

뉴라이트 중구연합의  배영규 공동대표는 경과보고를 통해 밤낮으로 각지역 대표들과 함게 숙의를 거듭 노력해 온 결실이 이제야 맺어진결과에 축하를하엿습니다.  특히 배영규 공동대표는 각지역대표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표시하엿습니다.  "자신이 중구연합의 공동대표로서  중구연합의대표 이학봉 대표를 수행하기도 햇으며..

 

고건을 지지하는 고사모  중요 회원들이 참석하여  애국세력 후보중...... 배영규대표의 지지에 자신들도 함께하겟다는 메세지로 .....설왕설래....." 배영규대표가 사양하여 방송을 해줄것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정치적 행사가 아닌 산악회 창립이며. 지지여부는  밝힐 입장이 아닌 정치적 사안이므로 공개된 발언을 삼가도록 요청하고 후일 포럼등에서 논의 하여 차선의 방책을 내자는데 동의되엇습니다.

 

이날 창립 행사에서 공개되고 전국 지역대표자가 약90%참석 한 행사에서 배영규대표는 .("뉴라이트 중구연합공동대표..목민포럼공동대표..목민교우회 회장 ..시청료거부운동사무총창  ...청년  공동대표등등 자신은 뉴라이트인으로 남고십다" )

 

..공식조직의  역할은 활동과 운동이 생명이라며 ."어느진영이든 애국세력 의 단합을 위한다면 역할을 할것이며........."  친목도모 단체라지만 정치색을 배제 할수없는 산악회에서  청계산악회회장의 발의로 만장일치의 동의 하에 청계산악회 부회장으로 추대습니다......   

 

친목 도모의 유대를 통한 교류와 단합을 강조하면서 추대된 배영규 부회장은 뉴라이트내의 산악회도 최소 약20만조직으로 활성화 해야 할것이라면서... 자신이 조직관계자가 아니라서 지지부진한데 아쉬움을 표시하여습니다.  뉴라이트에 많은 감투를 맡게되어 필요이상으로 견제와 에 노출되어 뉴라이트 공식 조직 확장에서 자신의 역할이 견제된채 부덕이 청계산악회창립에 직간접으로 참여햇슴을 �히고 ...그간 불철주야 노력해온 이용호 대표에게 무궁한 발전을 축원하고 자신이 힘 닫는데 까지 지원을 할것임을 역설하며... .

 

이때 (.촬영 기자분이 약2명 은 배영규회장에게 귀속말로 자신들의 자제를 이번에 졸업하면 취업을 부탁 하기도 하여 사람들이 배영규회장의 주위에 몰려 명함을 주고 받는 일이 ...)이날행사에 뉴라이트 참여인사 (경남.광명.포천)몇몇이 참석한 사실을 의식한듯.. 뉴라이트내 시각을 의식해서.. 정치적 성향을 띠기전 까지만(약20만 조직)참여하겟지만 공식상 부회장직은 영광으로 생각하며.거듭 사양하겠다며.. 그러나 애국세력의 조직의 확장에 자신의 역할이 있다면 감투에 상관없이 돕겠다고 하엿습니다.

[뉴라이트의 대표는 정치단체나 정당에가입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뉴라이트가 애국세력의 수권을 위해 일하려면 현실정치의 세계와 완전히 선을 그을수는 없다는점이 고민이고... 절에가서 정권을 교체하길 빌려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을수없어며.. 무조건 정당이나 정치와는 선을 긋는다고.. 하면서 발목을 잡기 때문에 함부로 감투를 받을 입장이 아니지만 ...  자신은  활동과 운동으로서 애국세력의 수권은 절대절명의 과제로 일할것이라며.... 공개 햇다면 친목도모의 단체로 알고  부회장직 수락없이..계속 애국세력 수권을 위해 조언하고 산행에  참여 할것이라고 �혓습니다.

많은 지회 지부장들이 돌아가면서 기념촬영을 하는등 명예회장 이학봉 회장 이용호   배영규 씨와 돌아가면서 기념촬영을 하며 청계산악회 출범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습니다..     ................김0건....기사

이날 행사에 고건 지지그룹의 대표인사약13명이 차후 배영규 대표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약속을 햇습니다.

 


산악회 안내
이웃사랑   조회 : 25   스크랩 : 0   날짜 : 2007.01.22 12:59
MB   청계 산악회

                                        

  청계산악회  회장     :      이용호[  

                  부회장  :      배영규 ,

                                     이종대

 

             국제위원징  :      성홍경

           미주지역담당 :      빛도호

            홍보위원장   :      양헌덕

 

 

         매월  첫주   토요일  :   정기 산행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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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앨범

총게시물 40 개 (1/2page)
  느린속도 창립대회 슬라이드
  청계산악회 창립대회
  이용호 회장
  이용호 회장과 함께
  이용호 회장과 함께
  청계산악회발대식-충남지부
  청계산악회발대식장
  지부장
  청계산악회발대식-7지부
  청계산악회발대식-6지부
  청계산악회발대식-5지부
  청계산악회발대식-4지부
  청계산악회발대식-3지부
  청계산악회발대식-2지부
  청계산악회발대식-1지부
  서울지부
  부회장
  남궁일주 서울사이버위원장
  배영규 부회장
  배영규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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