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기보다 덩치 큰 기기 나르고 허공에 대롱
“초등학교 저학년엔 무조건 대피 교육해야”
‘자기보다 덩치가 큰 소화기를 들고, 줄에 묶여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이 실질적 효용을 고려하기보다는 전시성 위주로 치러지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중랑구 묵동 ㅇ초등학교에서 소방 안전교육 도중 학부모가 굴절 사다리차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도 소방당국과 교육당국의 전시행정이 빚어낸 참사라는 지적이다.
지난 3월26일 서울소방방재본부는 ‘5월 가족의 달을 맞아 안전체험 행사를 실시하라’는 공문을 관내 소방서에 일제히 내려보냈다. 이에 따라 지난 1일부터 17일까지 사고가 발생한 ㅇ초등학교를 비롯한 10여곳에서 ‘소방안전캠프’를 운영했다. 여기에선 △이동형 안전체험 차량을 이용한 열·연기 대피 체험 △소화기 사용법 체험 △심폐소생술 체험 등이 가족 단위로 이뤄졌다. 위험이 따르는 굴절 사다리차 탑승이나 구조낭 대피 체험을 한 곳도 많았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서울의 한 소방서 안전교육 담당자는 “우리가 직접 기획을 할 수 없으니 공문이 내려오면 소방교육을 실시한다”고 말했다. 김선영 서울소방방재본부 안전교육팀장은 “본부는 체험차량 지원만 할 뿐 교육 내용은 일선 소방서에서 알아서 한다”고 밝혔다. 안전을 고려한 체계적인 교육 내용도 미리 마련되지 않은 상태로, 계기성 행사를 벌인 셈이다.
이런 안전교육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1~2학년생의 흥미를 끌 수는 있어도 비상시에 활용할 실질적인 훈련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동명 세명대 교수(보건안전공학)는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끌 수는 없는 만큼 화재 초기에 무조건 대피하도록 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고학년의 경우에는 소화기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화재경보 방법 등을 우선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각능력이 떨어지는 초등학생들에게는 건물 구조와 화재 때 대피할 동선부터 확실히 익혀주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노삼규 광운대 교수(건축공학과)도 “초등학생에게는 머리를 낮추거나 사람들끼리 손을 잡고 방향을 찾아 나가는, 기초적인 자기 보호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며 “어른들이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체험교육이라는 근본적 취지는 살리면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수준별 안전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 훈련이 일회성으로 끝나면 효과가 없기 때문에 꼭 필요한 체험훈련을 골라 반복교육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안전교육 마인드’ 부족은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당국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교사인 정애순 전교조 대변인은 “교육당국이 행사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 사다리차 동원 등 남이 안 하는 것을 했느냐에 관심이 있지 아이들의 안전의식을 키우는 방법에는 고민이 없다”며 “요즘엔 보고서에 행사 사진 등을 많이 첨부해야 하다 보니 일회성 행사 뒤에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말했다. 서울 한 초등학교의 허아무개 교사도 “해마다 소방안전 체험행사를 하지만 볼거리 위주에 대규모로 이뤄져 교육 효과가 없다”며 “규모가 작더라도 실효성 있게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ㅇ초등학교 사고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 중랑경찰서는 20일 학부모회 회장과 학교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안전교육에 학부모들이 강제로 동원됐는지를 조사했다. 주말 동안 사고를 목격한 학생들에 대한 심리치료가 진행된 데 이어 21일부터는 중랑구보건소 등 관계 보건기관에서 전교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선별검사 및 집중 치료가 진행될 예정이다. 노현웅 최원형 최현준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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