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10대 노숙자] 상. 거리의 아이들
지난달 14일 새벽 경기 수원시 한 고등학교 화단에서 온몸에 멍이 든 소녀의 주검이 발견됐다. ‘2만원을 훔친 도둑’으로 오인돼 어른 노숙인에게 폭행당해 숨진 소녀는 노숙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불우한 가정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청소년들이 이제 ‘노숙’의 단계로까지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줬다. 어른 노숙인들과 달리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사회안전망 바깥으로 내몰리고 있는 10대 노숙인 문제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 열두 살 명수
“별로 할 말이 없는데 … 하고 싶은 말은 욕밖에 없어요, 스트레스가 많아서.”
한눈에 봐도 오랫동안 한뎃잠을 잔 티가 났다.
흰색 티셔츠는 때가 잔뜩 묻어 짙은 회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퀴퀴한 냄새. 의자에 앉은 키 작은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쉴 새 없이 까딱거렸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말수는 적고 말투는 삐딱했다.
열두 살이었다. 명수(가명)는 지난달 25일 밤 9시30분께 서울 신림사거리에서 금천이동쉼터 직원들의 눈에 띄었다. 이동쉼터 차에서 상담을 받은 뒤 옆에 설치된 컴퓨터 게임기 앞에 앉은 명수는 틀림없는 초등학생 나이의 소년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집’은 지하철역과 거리였다.
운수업을 하는 아빠는 항상 술에 취해 가족들을 때렸다고 했다. 새엄마는 참고 살았지만, 두 살 위인 형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을 나갔다. 명수도 초등학교 4학년이던 지난해 처음 집을 나왔다. 그 뒤 1년 동안 가출을 반복했고, 이번에는 나온 지 3주째라고 했다. 주로 지하철 역 안에서 지냈고 오가는 사람들이 가끔 돈을 줬다. 이날도 5천원 정도 벌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피시방에서 다 써 버렸다. 일주일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명수는 이동쉼터에서 준 김밥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 “제발 한끼만 …”
명수처럼 오래도록 노숙을 하는 10대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문제는 먹는 것이다. 돈이 있는 초기에는 식당에서 밥을 사먹다가 점차 라면이나 김밥 등으로 끼니를 때우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과자 부스러기로 허기를 달래는 일도 허다하다.
서울 신림청소년쉼터에서 만난 김아무개(19)군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문 닫은 가게 앞에서 아이스크림 통을 뜯어 아이스크림으로 배를 채운 적도 있다”고 노숙 생활을 돌아봤다. 김군은 “일주일 동안 생라면 두 개만 먹고 버틴 친구도 있다”고 했다. 이 쉼터에서 만난 이아무개(17)군은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제발 한 끼만 먹여 달라고 사정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 뜬눈으로 새는 밤
잠잘 곳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가지고 나온 돈으로 여관 같은 곳을 찾지만, 점차 돈이 덜 드는 찜질방이나 피시방을 찾게 된다. 밤 10시가 지나면 미성년자가 출입할 수 없는 곳들이 대부분이지만, 집을 나온 10대들은 이른바 ‘뚫리는’ 곳들을 알아놓는다.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가면 붙잡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돈이 떨어지면 결국엔 밖에서 밤을 보낸다.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공원에 앉아 밤을 지새는 경우가 가장 많고, 역 대합실이나 건물 지하주차장, 아파트 옥상이나 계단 등도 자주 이용한다. 어른 노숙인들과 달리 10대들은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불안한 밤을 보내야 한다. 김군은 “너무 추워서 주차돼 있는 차 문을 뜯고 들어가 잔 적이 있다”며 “빈집 같은 안전한 장소를 찾지 못하면, 밖에서는 밤을 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 성매매라도
여자 청소년의 경우 잘 곳은 더욱 마땅찮다. 여관이나 찜질방, 피시방과 같은 곳이 아니면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그래서 남자 청소년들보다 돈이 더 필요하고, 끝내 인터넷 성매매를 통해 돈을 벌거나 남자 청소년들과 어울려 그들의 보호를 받기도 한다. 서울 금천청소년쉼터에서 만난 유아무개(19)양은 “친구와 공원 의자에 앉아 밤을 새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나타나 완력을 써서 몸을 더듬었다”며 “그때 이후로는 밤에 밖에 있는 게 무서웠지만, 돈이 없으면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 앵벌이, 삥뜯기, 빈집털이
남자아이들은 노숙을 이어가느라 다른 청소년들한테서 돈을 뺏거나 훔친다. 신림쉼터의 권아무개(18)군은 “어떤 아이들은 용돈으로 5만~6만원씩 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학원 수강료는 10만원이 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삥뜯기’는 강력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군은 ‘아리랑치기’나 ‘빈집털이’를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끼리끼리 뭉쳐 다니는 것은 이들 나름의 생존법칙이다. 서넛 정도는 뭉쳐 있어야 돈을 구하기도 쉽고 위험에 저항하는 방법도 생긴다. 이런 무리에 끼지 못한 노숙 청소년들은 생존을 주로 앵벌이에 의지한다. 김군은 “드문 사례이긴 하지만, 무리에 속하지 않고 혼자 지내던 아이가 성인 노숙인들과 어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역의 한 노숙인은 “성인 노숙인들과 함께 사는 여자 아이들이 많다”며 “당장 먹고 살 만한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가장 어두운 구석으로
하지만 노숙인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역, 영등포역, 고속터미널 등을 돌아다녀 봐도 청소년 노숙인들이 쉽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신림쉼터의 박진규 상담팀장은 “거리의 권력관계에 따라 상대적 약자인 청소년 노숙인들은 성인 노숙인들에게 좋은 자리를 뺏긴다”며 “외부의 위협을 피하려고 건물 옥상이나 지하 주차장 등 남이 찾기 어려운 곳으로 숨어들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 자체가 부족한 탓에 10대 노숙인은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경찰이나 청소년위원회 등 정부기관도, 민간 노숙인 지원단체도 이들에 대한 통계를 갖고 있지 않다. 오늘 밤도 어디선가 고픈 배와 불안한 잠자리를 견뎌야 할 10대들. 그곳은 아마도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구석 어디일 것이다. 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지난달 14일 새벽 경기 수원시 한 고등학교 화단에서 온몸에 멍이 든 소녀의 주검이 발견됐다. ‘2만원을 훔친 도둑’으로 오인돼 어른 노숙인에게 폭행당해 숨진 소녀는 노숙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불우한 가정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청소년들이 이제 ‘노숙’의 단계로까지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줬다. 어른 노숙인들과 달리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사회안전망 바깥으로 내몰리고 있는 10대 노숙인 문제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 열두 살 명수
“별로 할 말이 없는데 … 하고 싶은 말은 욕밖에 없어요, 스트레스가 많아서.”
한눈에 봐도 오랫동안 한뎃잠을 잔 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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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이었다. 명수(가명)는 지난달 25일 밤 9시30분께 서울 신림사거리에서 금천이동쉼터 직원들의 눈에 띄었다. 이동쉼터 차에서 상담을 받은 뒤 옆에 설치된 컴퓨터 게임기 앞에 앉은 명수는 틀림없는 초등학생 나이의 소년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집’은 지하철역과 거리였다.
운수업을 하는 아빠는 항상 술에 취해 가족들을 때렸다고 했다. 새엄마는 참고 살았지만, 두 살 위인 형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을 나갔다. 명수도 초등학교 4학년이던 지난해 처음 집을 나왔다. 그 뒤 1년 동안 가출을 반복했고, 이번에는 나온 지 3주째라고 했다. 주로 지하철 역 안에서 지냈고 오가는 사람들이 가끔 돈을 줬다. 이날도 5천원 정도 벌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피시방에서 다 써 버렸다. 일주일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명수는 이동쉼터에서 준 김밥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 “제발 한끼만 …”
명수처럼 오래도록 노숙을 하는 10대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문제는 먹는 것이다. 돈이 있는 초기에는 식당에서 밥을 사먹다가 점차 라면이나 김밥 등으로 끼니를 때우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과자 부스러기로 허기를 달래는 일도 허다하다.
서울 신림청소년쉼터에서 만난 김아무개(19)군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문 닫은 가게 앞에서 아이스크림 통을 뜯어 아이스크림으로 배를 채운 적도 있다”고 노숙 생활을 돌아봤다. 김군은 “일주일 동안 생라면 두 개만 먹고 버틴 친구도 있다”고 했다. 이 쉼터에서 만난 이아무개(17)군은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제발 한 끼만 먹여 달라고 사정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 뜬눈으로 새는 밤
잠잘 곳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가지고 나온 돈으로 여관 같은 곳을 찾지만, 점차 돈이 덜 드는 찜질방이나 피시방을 찾게 된다. 밤 10시가 지나면 미성년자가 출입할 수 없는 곳들이 대부분이지만, 집을 나온 10대들은 이른바 ‘뚫리는’ 곳들을 알아놓는다.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가면 붙잡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돈이 떨어지면 결국엔 밖에서 밤을 보낸다.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공원에 앉아 밤을 지새는 경우가 가장 많고, 역 대합실이나 건물 지하주차장, 아파트 옥상이나 계단 등도 자주 이용한다. 어른 노숙인들과 달리 10대들은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불안한 밤을 보내야 한다. 김군은 “너무 추워서 주차돼 있는 차 문을 뜯고 들어가 잔 적이 있다”며 “빈집 같은 안전한 장소를 찾지 못하면, 밖에서는 밤을 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 성매매라도
여자 청소년의 경우 잘 곳은 더욱 마땅찮다. 여관이나 찜질방, 피시방과 같은 곳이 아니면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그래서 남자 청소년들보다 돈이 더 필요하고, 끝내 인터넷 성매매를 통해 돈을 벌거나 남자 청소년들과 어울려 그들의 보호를 받기도 한다. 서울 금천청소년쉼터에서 만난 유아무개(19)양은 “친구와 공원 의자에 앉아 밤을 새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나타나 완력을 써서 몸을 더듬었다”며 “그때 이후로는 밤에 밖에 있는 게 무서웠지만, 돈이 없으면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 앵벌이, 삥뜯기, 빈집털이
남자아이들은 노숙을 이어가느라 다른 청소년들한테서 돈을 뺏거나 훔친다. 신림쉼터의 권아무개(18)군은 “어떤 아이들은 용돈으로 5만~6만원씩 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학원 수강료는 10만원이 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삥뜯기’는 강력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군은 ‘아리랑치기’나 ‘빈집털이’를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끼리끼리 뭉쳐 다니는 것은 이들 나름의 생존법칙이다. 서넛 정도는 뭉쳐 있어야 돈을 구하기도 쉽고 위험에 저항하는 방법도 생긴다. 이런 무리에 끼지 못한 노숙 청소년들은 생존을 주로 앵벌이에 의지한다. 김군은 “드문 사례이긴 하지만, 무리에 속하지 않고 혼자 지내던 아이가 성인 노숙인들과 어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역의 한 노숙인은 “성인 노숙인들과 함께 사는 여자 아이들이 많다”며 “당장 먹고 살 만한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가장 어두운 구석으로
하지만 노숙인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역, 영등포역, 고속터미널 등을 돌아다녀 봐도 청소년 노숙인들이 쉽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신림쉼터의 박진규 상담팀장은 “거리의 권력관계에 따라 상대적 약자인 청소년 노숙인들은 성인 노숙인들에게 좋은 자리를 뺏긴다”며 “외부의 위협을 피하려고 건물 옥상이나 지하 주차장 등 남이 찾기 어려운 곳으로 숨어들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 자체가 부족한 탓에 10대 노숙인은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경찰이나 청소년위원회 등 정부기관도, 민간 노숙인 지원단체도 이들에 대한 통계를 갖고 있지 않다. 오늘 밤도 어디선가 고픈 배와 불안한 잠자리를 견뎌야 할 10대들. 그곳은 아마도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구석 어디일 것이다. 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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