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에비타의 헌신적인 사랑,신뢰

自公有花 2012. 9. 4. 23:15

에바페론(Eva peron)은 1940년대 중반 페론 대통령의 부인이다.  애칭으로 '애비타'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민족정의운동(Movimiento Nacionalista Justicialista)페론주의자들은 알젠티나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으나, 다른 세계에서는 곧잘 알젠티나를 망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페론집권 당시 알젠티나 경제는 괜찬았기에 페론이후의 알젠티나를 비교해서 포플리즘의 대명사로 지칭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알젠틴)의 시골마을 로스 톨도스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가난하고 어렵게 어린시절을 보낸 에바는 15세때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무작정 상경하여 홀로 지내는 중에 1946년 육군대령 후안 페론을 만나서 페론의 출세를 위해 무었이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고,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페론은 결혼을 하였다.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은  천박했던자신의 지난  출신을 극복하고 1946년 2월 대통령선거에 페론을 등장시켰고, 에바는 선거당시부터  남편에게 페론주의라는 히틀러의 국가주의를 모방한 아르헨티나를 설득하여 끝내 알젠티나에 페론주의를 실천하게 하였다.

 

에바는 자신의 천출의 경험을 토대로한 '페론주의'를 실천하면서 외국자본의 추방, 기간산업의 국유화, 노동자처우개선 입법제정, 여성 특히 남녀평등과 여성의 공무담임권 획득을 하게 하였다. 알젠티나의 시민들과 노동자와 빈민들은 그녀를 전폭적으로 후원하고 지지하였다.

 

에바는 국민적 대중적 지지를 이용해서 남편 페론의 우상화 작업에 착수하였고, 초등학생들로 하여금 페론찬양과 글짖기 숙제를 하도록 하기도 하였다. 에바의 헌신적인 페론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 사랑이 우상화라는 결과를 빚어내었으나, 에바는 불행하게도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온 알젠티나는 슬퍼하며 한달간의 국장을 성대히 치르고 알젠티나는 그야 말로 슬픔에 빠지고 말았었다.

 

에바가 죽고 난다음 페론은 에바가 실천하려고 하든 페론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 에바의 지지층인 시민들의 호응이 떨어지고, 많은 시행착오로 민심이반이 점증하였고, 곳 곳에서 여러 마찰이 빚어지게 된다. 아마도 실제 어려움을 경험한 에바가 없었기에 정책들이 표류하기 시작했던것 같고, 대부분의 에바가 시작한 정책들도 시민들과는 괴리되어 표류하는 현상이 나타나자 페론은 강력한 정책을 밀어 부쳤다. 

 

정책을 강력히 밀어부치는 데 교회를 비롯한 많은 반대에 부딪혀 페론은 무력화되어 갔으며, 알젠티나 군부는 1955년 정권을 접수하기에 이르르고 페론은 군부에쫒겨 망명길에 오르게 되고, 에바의 시신도 이곳 저곳으로 지지자들에 의해 떠 돌게 되었다. 당시 알젠티나 군부는 에바의 인기와 지지를 염려하여 에바의 시신을 훔쳐서 멀리 이탈리아로 옮겨 숨겨버렸었다.  

 

시민 노동자 여성들로 이루어진 에바의지지 군대에서 군부에 압력을 넣어 에바의 시신을 마드리드에 망명중에 있던 페론에게로 넘기도록 했다. 죽은 에바가 알젠티나의 군부를 굴복시킨 것이였다. (에바의 지지 시민들이 군부를 굴복시킴)

 

에바가 죽은지 오랜시간인 1973년 10월 대통령 선거에서  후안 페론은 에바를 그리워하는 시민들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후안 페론은 페론주의를 주장하며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도중 10개월 못 되어 사망하고 만다. 

   
    
  

최근 새 정부(페론주의)가 들어 선 뒤에, 에바 페론의 시신은 레콜레타 공동묘지의 가족 묘역으로 옮겨졌다. 죽은 지 24년 만의 일이었다.  빈민층 출신인 에비타는 온갖 역경을 딛고 '국모'가 된 후 노동자와 서민들을 위해 파격적인 복지정책을 내놓아 국민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으며, 그 영향으로 알젠티나의 페론주의는 알젠티나만의 문제를 넘어 세계도처를  휩쓸고 있다. ^^ 
 

 

 

 

 미국의 견제로 한때 아르헨 국채는 미 월가에서 액면가 1백달러 짜리가 20~30달러로 거래되기도 했다.최근 아르헨정부가 원금의 75%를 탕감하자고 버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르헨티나가 가장 많은 외채를 기록했던 메넴정권 당시에는 민영화라는 허울을 내세워 모든 민간차관을 정부가 보증을 해주는 제도를 도입하기까지 했다. 이에 따라 부패한 지방관리들은 미국계 은행과 연계, 유령회사를 차려놓고 차관을 제공받아 부도를 내는 등 대다수의 외채는 정부는 알지도 못한 부채들이 있었다. 즉, 에바와 무관한 선진국의 알젠티나 때리기에 에바에게 누명을싀운것이 아닐가요, 지금 알젠티나에는 에바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네요,

 

사진은 안동하회탈~~^^ 어샤- 우리나라도 신뢰가 횝쓸고 있다. ,^^ 신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