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自公有花 2013. 7. 20. 17:16

'빛의 천사'말하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엄청난 장애를 딛고 일어선 위대한 여성 헬렌켈러, 어느 날 헬렌은 정원에서 꽃 한송이를 꺾어서 설리반 선생에게 드렸습니다. 그때 설리반은 헬렌의 손바닥에 글을 썼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헬렌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사랑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설리반은 헬렌의 손을 잡아 헬렌의 가슴에 대고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라고 글을 썼습니다. 설리반 선생은 헬렌의 말을 마음으로 읽고 있었습니다.

 

"사랑이란 꽃의 향기와 같습니까?" 헬렌의 물음에 설리반은 그렇지 않다고 분명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며칠 후, 헬렌의 집에는 아침부터 먹구름이 뒤덮여 있었습니다. 태양은 가려져 어두운데다가, 바람이 불어 오후까지 내내 음울한 분위기가 계속 되었습니다.

 

헬렌은 그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헬렌은 기뻐하며 물었습니다. "사랑이란 이런 것입니까?" 설리반 선생은 헬렌의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한참동안 써내려 갔습니다.

"헬렌, 사랑이란 태양이 나타나기 전에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같은 것이란다. 구름은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지. 너도 비를 맞아 보았지?

 

햇볕을 쬐고 난 뒤 비가 내리면 땅위의 나무들과 꽃, 풀들은 너무나 기뻐한단다. 비를 맞아야 쑥쑥 자라거든. 이제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

"예 선생님."

"사랑이란 손에 잡히지 않은 것이지만 그것이 사람에게 부어져 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란다. 사랑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단다."


헬렌은 이렇게 진실한 설리반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사랑을 배우게 되었고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이란 정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없다면 세상은 이루어지지 않겠죠. 기쁨이란 자체도 없을거고요. 헬렌켈러 여사는 아무 것도 없는 암흑에서 단지 설리반 선생의 따뜻한 손길로 쓴 손바닥 글씨에 하나에 사랑이 전달되어 누구보다도 행복을 전파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1937년에는 우리 나라를 방문한 적도 있다. 1964년에는 미국의 민간 최고 장인 ‘자유 훈장’을 받았다. 장애를 극복하려는 그녀의 노력과 정신력은 전세계 장애인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었다. 저서에 <나의 생애>, <암흑 속에서 벗어나>, <나의 종교>, <헬렌 켈러의 비망록> 등이 있다.

 

산삼, 양방에서 간암1기는 간 자체에 암세포가 국한된 상태로 임파 등으로 전이가 되지않은 상태이므로 간암 부위의 제거를 윈칙으로 합니다.( 우리나라 의학이란 양방만 있는게 아니지요, 즉, 한방과 한약들이 있는데 체질이나 자신과 맞는다면 치료가 가능합니다.)그림: 우리농산물연합회

 

 


◈헬렌켈러(Keller, Helen Adams, 1880-1968)

 

1. 생애

생후 얼마 되지 않아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하지 못하는 3중의 고통을 지고 있었으나 설리반 여사의 노력으로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전 생애 맹, 농아를 위해서 헌신, 희망과 복음을 전해 주었다.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났으며 2세 때 열병을 앓아 눈이 멀고, 귀가 먹고, 말을 못 하는 불구자가 되었다. 7세 때인 1887년부터 설리번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았다. 설리번은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수화 알파벳으로 사물의 이름을 가르치고, 후두에 손가락을 대어 진동을 느낌으로써 말하는 법을 배우게 하였다.

 

눈은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하지 못하는 삼중의 고통을 극복하고 사회복지를 위해서 생애를 바친 헬렌 켈러. 그녀는 그 때문에 <기적의 사람>이라 불린다.

헬렌 켈러는 생후 1년 반 동안은 발육이 좋은 아기였다. 그러나 생후 19개월 때 중병에 걸려서 시력, 청력과 언어 발생력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설리반도 또한 불행한 과거를 지니고 있는 여성이었다. 10살 때 남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보내어져 기기서 학대와 고통의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성장했던 것이다. 불결하고 빈약한 환경 가운데서 남동생은 죽어 갔다. 그녀도 또한 눈병에 걸려 실명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후 파킨스맹학교 에서 교사를 하고 있던 무렵에 헬렌켈러의 가정교사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아직 겨우 20세가 된 설리반은 인내심이 강하고 애정이 깊고 그리고 신앙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본 헬렌켈러는 이미 6세가 되었는데도 아무런 교육이 되어 있지 않았고 손으로 음식을 먹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닥치는 대로 주위의 물건을 집어던지는 야수 그 자체였다.

 

그날부터 설리반과 삼중고의 소녀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얼굴을 씻는 것도 머리카락을 빗는 것도, 나이프와 포오크로 식사를 하는 것도 헬렌과 격투를 하면서 가르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단지 울어대는 것과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해왔던 헬렌은 엄격한 교육에 전신으로 반항했다.

 

설리반은 신중하고 끈기있게 단 하나 남아있는 인식의 창구인 촉각을 통해서 암흑 에 갇힌 영혼을 향해서 자극을 준 것이다. 그때까지 갇혀있던 헬렌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열리기 시작한 것은 지화법에 의해서<인형>이란 말을 헬렌이 알게 된 때였다.

헬렌의 기억력과 상상력은 다행스럽게도 무척 강했다.

 

처음에는 신기한 것 같았지만 반복해서 가르치는 중에 <인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자 마치 둑이 터진 것처럼 헬렌의 지식욕은 넘쳐 났던 것이다. 아는 기쁨, 그것이 암흑의 세계로부터 세상 속으로 끌어내었던 것이다. 헬렌의 잠자고 있던 마음은 눈뜨기 시작하고 폭발적인 격렬함으로 언어를 흡수했던 것이다.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헬렌의 놀람은 그녀를 육체적으로 쇠약하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1900년 20세가 된 헬렌은 하버드대학의 레드크리프 컬리지에 입학했다.

그때에 그녀는 "나는 이제 농아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지화법이나 점자, 발성을 배워 정상인 이상의 지식을 얻어서 대학에 입학한 그녀의 그것이 제일 첫마디였다.

 

 그리고 4년 후 세계 최초의 대학교육을 받은 맹, 농아로서 그녀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것이다.

이 기적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경탄과 찬사를 받았다.


그 해 센트 힐 박람회에서 <헬렌 켈러의 날 >이 제정되어 헬렌은 처음으로 강연을 했다.

그후 그녀는 미국 본토는 물론 해외에서도 강연 여행에 나서 맹인 및 신체장애자에 대한 세상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고 사람들에게 커다란 희망과 복음을 심어 주었다.

 

 

2.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

 

헬렌켈러(1880~1968)와 앤 멘스필드 설리반(1886~1936) 사이의 이야기

 

 사람이 되고자 했던 착한 학생과 사람을 만들고자 했던 위대한 스승, 인간이 되고자 했던 헬렌켈러의 의지가 없었다면, 아무리 위대한 스승이 있더라도 그 일은 이루어질 수 없고, 헬렌켈러가 자기의 장애를 극복하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헌신적이고, 가장 적시 적절한 지도를 할 수 있는 스승이 없었다면 이 또한 이루어질 수 없다.

 

위대한 스승은 훌륭한 제자가 있어야 하고, 훌륭한 제자 역시 위대한 스승이 있어야 이루어진다. 세상 일이란 그렇게 서로 호응이 있을 때에만 결과 또한 위대하다.

 

※ 참고 자료

 

 말하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엄청난 장애를 딛고 일어선 위대한 여성 헬렌켈러가 희망의 빛을 어떻게 발견했는지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헬렌은 정원에서 꽃 한송이를 꺾어서 설리반 선생에게 드렸습니다. 그때 설리반은 헬렌의 손바닥에 글을 썼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헬렌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사랑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빛의 천사' 헬렌 켈러는 3중 불구자이면서도 절망하지도, 삶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왕성한 의욕과 꿋꿋한 의지를 가지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스스로 피눈물나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녀는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로서 최초로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되었고, 인문학 및 법학 박사의 칭호를 받았다. 헬렌 켈러는 한평생 맹인 복지 사업에 헌신했고, 가는 곳마다 신체 장애자들로부터 '파랑새의 방문'이라고 크게 환영을 받았으며, 모든 사람으로부터 '세 가지의 고통을 이긴 성녀'로 우러름을 받았다.

 

우리는 헬렌 켈러의 그 숭고한 사랑의 정신은 물론, 새 삶을 위하여 불태웠던 그녀의 왕성한 의욕 과, 절망을 딛고 일어 설 수 있었던 그녀의 굳은 의지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헬렌켈러와 관련된 일화

헬렌은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장님이고 벙어리인, 네 살 난 토미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토미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까지 직장을 잃게 되어 누구로부터도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헬렌은 설리번 선생님에게 "참 불쌍합니다. 토미도 저와 같이 책을 읽고 말을 할 수 있게 교육 을 시켜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설리번 선생님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곤란하다고 말씀하셨다.

 

헬렌은 그 날로 용돈을 모두 털어 토미를 돕자는 내용의 편지를 썼고, 이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 이 토미 돕기 운동에 성금을 보내 주었다. 헬렌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토미는 유치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헬렌은 열 한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남의 도움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헬렌켈러의 기적

1904년, 헬렌은 세계 제일의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였다. 헬렌은 사각 모자를 쓰고 소매가 넓은 가운을 입고 졸업생들과 함께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순서에 의해 헬렌은 브릭스 총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장을 받는 순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고생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설리번 선생님도 감격의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 식장에 있던 모든 사 람들은 일제히 헬렌의 뛰어난 천재성과 설리번 선생님의 훌륭한 교육을 찬양하였다. 몸이 성한 수재라도 입학하기 힘든 하버드 대학, 그러한 명문 대학에서 눈멀고 귀먹고 벙어리인 헬 렌이 졸업의 영광을 안았으니, 그야말로 가히 기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헬렌켈러

 

 

설리번의 지도를 받으면서 보스턴에 있는 호레이스 맨 농아 학교와 뉴욕에 있는 라이트 휴메이슨 수화 학교를 다닌 결과 브라유 점자를 읽고 쓸 수 있었다. 이로써 정상적인 교육 과정을 밟게 된 헬렌 켈러는 1904년에 케임브리지의 래드클리프 대학을 우등생으로 졸업하였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대학 교육을 받은 맹농아자이다. 이 때 설리번은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강의 내용을 쓰는 방법을 이용하였다. 1906년에 매사추세츠 주 맹인 구제과 위원에 임명되고, 1924년부터 미국 맹인 협회의 일을 하였다.

 

‘빛의 천사’로 불리며 자기와 같은 불행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교육하는 사회 사업에 온 생애를 바쳤다. 전세계를 다니며 신의 사랑과 섭리를 역설하여 맹농아자의 교육, 사회 복지 시설의 개선을 위한 기금을 모아 맹농아자 복지 사업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헬렌 켈러는 미국의 앨라배마주 터스컴비아에서 태어났다. 헬렌 켈러는 난 지 19개월 만에 열병을 앓아 청각과 시각을 잃었다. 그래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며, 따라서 말을 할 수 없는 장애자가 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5년 동안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으나 효력을 보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지냈다.

 

 


그러던 중 헬렌의 나이 7세 때, 설리번이라는 가정 교사를 맞이하였다. 설리번은 헬렌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그녀는 손바닥에 글자를 써서 헬렌에게 알파벳을 가르쳤다. 이리하여 헬렌은 글자를 쓸 수 있게 되었고, 1890 10세 때부터는 말도 하였다.
이것은 설리번의 뛰어난 지도 방법의 덕분이기도 하였겠지만, 한번 가르쳐 주면 결코 잊지 않는 헬렌의 명석한 두뇌와 끈기 있는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다.


1894년, 헬렌 켈러는 뉴욕의 라이트 해머슨 농아 학교에 입학하여 2년 동안 공부하고, 1900년에 래드클리프 대학에 진학하여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맹농아자가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은 역사상 헬렌이 처음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항상 헬렌을 따라 다니면서 통역을 해 준 설리번의 힘이 매우 컸다.


대학을 나온 헬렌은 자기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기 위해서 강연을 했고 책을 써 냈다. 사례금으로 들어온 돈은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헬렌은 농아들을 돕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2백만 달러 자선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으며, <구원>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하고, 강연 여행을 하기도 하면서 잠시 동안도 쉬지 않았다.

 

 


1936년 가을, 헬렌의 인생을 함께 살아 온 것과 다름없었던 설리번이 사망하자, 헬렌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러나 언제까지 슬픔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폴리 톰슨의 도움을 받아 미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장애자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고, 그들의 교육과 사회 시설의 개선을 위해서 힘썼다.

 

 


그 밖에도 그녀는 <나의 생애> <신념을 가져라>와 같은 저서를 내어 장애자들에게 다시 한 번 희망과 가능성을 가지게 해 주었다.
80세가 넘어서도 행복을 전하는 파랑새로, 빛의 천사로 장애자를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산 헬렌은 1968년 6월 1일, 웨스트포트에서 88세로 생애를 마쳤다.

 

 

3. 헬렌켈러의 명언

 

 

1)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십시오. -헬렌 켈러

2) 고통의 뒷맛이 없으면 진정한 쾌락은 거의 없다. -헬렌 켈러

3) 교육의 최고의 성과는 관용이다. -헬렌 켈러

4) 나는 나의 역경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왜냐하면 나는 역경 때문에 나 자신,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

 

5)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헬렌켈러

6) 나는 종종 성인(成人)들이 단 며칠간만이라도 맹인과 귀머거리가 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맹인이 되면 시력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고, 또 귀머거리가 되면 소리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

7) 낙천(樂天)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신앙이다. -헬렌 켈러

8) 말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사상이다. -헬렌 켈러

9) 불구자라도 노력하면 된다. -헬렌 켈러

10) 선조들 중에서 노예를 가지지 아니한 왕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선조들 중에서 왕을 가지지 아니한 노예도 하나도 없다. -헬렌 켈러

 

1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헬렌 켈러

12) 세상이 비록 고통으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힘도 가득합니다. -헬렌켈러

13) 신은 용기있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헬렌 켈러

14) 아름다움은 내부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다. -헬렌 켈러

15) 여러분이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는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타인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한, 삶은 헛되지 않습니다. -헬렌 켈러

16)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 우리의 삶에, 아니 타인의 삶에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헬렌 켈러

 

17) 우리는 선과 악을 모두 알지 못하고는 스스로를 위한 바른 길을 자유롭고 현명하게 선택할 수 없다. -헬렌 켈러

18) 이 세상에 인간의 마음속에는 너무나 많은 악(惡)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과 인간의 마음속에는 크나큰 선(善)도 있다.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본분을 다하려 노력하면 삶의 평온한 시간을 누릴 수 있다. -헬렌 켈러

19) 인간의 성격은 편안한 생활 속에서는 발전할 수 없다. 시련과 고생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은 단련되고 또한 어떤 일을 똑똑히 판단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며 더욱 큰 야망을 품고 그것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헬렌 켈러

 

20) 인생의 불모지를 친절로 열매가 풍성한 곳으로 만드는 사람들과 상종하라. 당신의 마음속에 천국의 비전을 담고 다녀라. 그리고 그 비전에 부합되도록 개선시켜라. -헬렌 켈러

21) 자기본위와 불평 때문에 마음이 비뚤어지고 흐려지듯 사랑도 사랑의 기쁨 때문에 명확한 분별력을 가지기도 하고 예민해지기도 한다. -헬렌 켈러

 

22) 자기 연민은 최대의 적이며, 거기에 굴복하면, 이 세상에서 현명한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헬렌 켈러

23)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삶이란 헛갈리고 이간질하는 것으로 죽음보다 더 잔인한 것이다. 반면에 죽음은 헛갈렸던 것이 모이고 타협하는 영원한 하나의 삶인 것이다. -헬렌 켈러 [수상록]

24) 태양을 바라보고 살아라. 너의 그림자를 못 보리라. -헬렌켈러

25)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헬렌 켈러

 

26) 희망은 인간을 성공으로 인도하는 신앙이다. 희망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도 없다. -헬렌켈러

 

 

출처: 켈러 자료 지식인 기타 백과사전

헬렌켈러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울 할 땐 노란민들래로 회를 쌈사먹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긴장이 풀린다."하는 일이 않풀리거나, 우울 할 땐,

          노란 민들래꽃으로  쌈을 싸서  소주와 곁들이면 정신이 맑아지고 긴장이 풀린다.

   "힘든 일이 있을때 참고 인내하는 것은  DJ 선생님이 하는 것을 배울 만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