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에 시작 (미) 통계에 따르면 60만 명이 전쟁으로 사망하고, 전체 참전국의 사망자를 모두 합하면 약200만명에 달하고, 남한의 사망자는 백만 명이 넘으며 그중 85%는 민간인으로 20만명의 전쟁미망인과 10만의 고아 산업시설 대부분파괴와 1천만의 이산가족을 발생시켰다.”
“ 1951년 6월16일 Trigbri 유엔사무총장이 한국전쟁 휴전을 제의 하고, 6월 27 소련 외무상이 휴전 성명을 발표하였다. 미,정부는 1951년 6월 29일 유엔군 사령관 Ridgeway 이 휴전을 제의하고1951년 7월10일 첫 휴전회담 개최, 판문점으로 회담장소를 이동, 159회의 본회담, 179회의 분과위원회 회담, 188회의 참모장교 회담, 238회 연락장교 회담 등 총 765회의 회담을 갖고 1953년 7월 25일 휴전협정을 체결하고 7.27 휴전을 발효하였다.” 현재 우리 남북은 1951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조인한 휴전협정에 따라 평화 속에 대결 과 경쟁의 불완전한 평화를 누리는 상태로 한반도에서 북한의 불가측성 긴장으로 전쟁을 거론하면서 협상에 임하는 극히 불완전한 긴장을 조성하는 대결 전략을 구사 하는 몰지각한 인사들에 의해 평화가 위협받고 국제적 비난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우리의 정권교체 과정에서도 “퍼주었다” 라는 주장과 이것이 핵무기와 미사일 같은 무기 개발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사실여부를 떠나서 사실 우리 한국이 능력만 된다면 가능한 북한을 많이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 한 것이지만, 북한이 휴전회담의 정신을 위배하고 무기개발을 통한 긴장을 조성 하고 대결과 경쟁을 부추기므로 국제사회의 어렴움이 가중되자 우리국민들이 대결을 비난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은 유가적 자유주의 체제를 통해 국민들은 모두가 지벌어서 지먹고 살아가는 성숙된 사회 제도를 통해 시민들이 어떤 직업을 갖게 되든 간에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이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취향대로 향기롭게 살도록 최소한의 윤리와 도덕만 지킨다면 법에 갈일이 없는 건강한 사회였었는데, 요즘 세태의 투쟁들은 인위적 법을 숭상한 대결과 경쟁이 빛은 비극의 결과들이다.
피멍든 전쟁속에 "휴전" 과 같은 소중히 얻은 평화를 사랑하듯이 이 시대에 오늘도 도처에서 벌어지는 극렬한 여러 투쟁들을 볼 때 자유주의 승리의 과실을 다투기 위해 사회적 극한투쟁 속에 몰입된 죽으려 는 자 와 죽이려는 자들에게 “휴전” 을 상기 하고 다시금 소중히 평화를 숭상하는 인본주의적인 사회자율 확대를 통해 피멍든 사람들 가슴을 씻어주고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 할 때이다.
우리 어릴 때 가난한 시절이지만 파출소에서 순경이 동네사람 잡으로 와서도 동네 어른들이 “그놈 두고 가” 하면 그냥 두고 가는 것이 법이였다. 어른들 말에 철학이 있었고 정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시대였었다. 우리 사회는 이기고 죽이려는 사람들보다 살리려는 양보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휴전”과 같은 평화를 사랑하고 질서와 도덕을 숭상하는 사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6.25전쟁 당시 남북이 대치한 전장에서 언제 죽을지를 모르든 병사들이 적을 향해 총질을 해야만 하든 전쟁 속에서 휴전의 소식을 들은 병사들의 환호성 만세 소리는 병사들을 살리는 기적과 축복 이였다. 우리가 전쟁의 상처인 6.25 보다는 평화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고 “한국전쟁 7.27 휴전”을 상기하여 어떻게 든 우리사회를 살리기 위한 양보와 이해심이 많아지는 성숙된 자율이 사회에 넘쳐나게 되도록 우리 사회에 축복이 내리도록 모두가 노력하는 휴전기념이 되었으면 한다.
● 칼럼니스트 목민포럼 대표 (배영규)
● 배영규 칼럼니스트의 서울포스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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